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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완아, 정신차려!… 포화속 윤영하 정장 외침에 눈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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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완아, 정신차려!… 포화속 윤영하 정장 외침에 눈물 쏟아져”

정성택기자 입력 2015-06-04 03:00수정 2015-06-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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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 시사회서 13년전 떠올린 이희완 소령
제2연평해전에서 고속정 참수리호의 부정장이었던 이희완 소령. 이 소령은 영화 ‘연평해전’의 개봉을 앞두고 3일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 개봉을 계기로 국민들이 ‘국가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가치관을 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군 제공
평소 사석에서도 그는 이름을 부르진 않았다. 그냥 필요한 말만 전할 뿐이었다. ‘부장(부정장의 줄임말)’ 등 직함으로 사람을 찾는 그에겐 엄격함이 있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바쳐 승리를 이끈 참수리 357호 고속정장 윤영하 소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영화 ‘연평해전’ 속에선 총탄이 빗발치는 참수리호 위에서 윤 소령이 오른쪽 다리를 잃은 나의 이름을 불렀다. “희완아, 정신차려!” 영화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생전에 내 이름을 직접 부르진 않았지만, 그가 항상 내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줬다는 사실을. 나를 비롯해 부하 동료들을 위하던 진심만큼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제2연평해전에서 생존한 해군 이희완 소령(39)에게 영화 ‘연평해전’은 먼저 떠난 동료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였다. 이 소령은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평해전’ 시사회를 보고 난 후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당시 북한 함정에 맞서 싸웠던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정장 윤 소령부터 떠올렸다. 이 소령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당시 윤 소령의 실제 방송 인터뷰 장면이 나올 때 더욱 그리웠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령은 제2연평해전에서 윤 소령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부정장이었다. 윤 소령은 대위 진급 후 첫 부임지가 참수리 357호였다. 옆에서 본 윤 소령은 빈틈없는 전투대비태세를 강조했던 원칙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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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눈이 많이 온 날이었습니다. 매일 오전 10시엔 전투배치 훈련을 하는데 ‘기상이 좋지 않아 오후로 미루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윤 소령은 ‘야 부장, 눈 오면 전쟁을 안 하고 눈이 오지 않으면 전쟁을 할 거냐’고 했습니다. 그 대답이 제 군생활의 철학이자 진리가 됐습니다.”

윤 소령은 작전 중엔 누구보다 엄격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언젠가는 집에서 구워온 쿠키를 무심한 듯 찔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모든 승조원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 소령은 이번 영화 제작과정에 당시 참수리호의 구체적인 움직임 등을 조언했다. 영화는 당시 전사한 윤 소령과 박동혁 병장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당시 오전 9시 30분부터 30여 분간 이어진 전투 대부분을 지휘한 것은 이 소령이었다. 윤 소령은 북한의 공격이 시작되고 대응사격을 지시한 직후 등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이 이 소령에겐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24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에서 살아남은 그였지만 적의 포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왼쪽 다리 무릎 아래엔 지름 8cm의 구멍이 뚫리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다치는 그 순간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내 몸 하나를 걱정하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뭘까. 작전에만 몰입했다”고 말했다.

이 소령은 올 1월부터 합동군사대학의 해군대학에서 장교들에게 해군 작전·전술을 가르치고 있다. 같이 싸우다 전사한 윤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이 앞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나지막이 숨부터 내쉰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해줄 겁니다. 그러고 살아있는 것이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목숨을 바쳐 서해를 지켜낸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연평해전#시사회#이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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