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세월호 참사로 본 ‘시맨십(seamanship)’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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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버린 선원들, 뱃사람의 '섀클턴 정신'도 침몰시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들을 뒤로하고 구조선에 가장 먼저 몸을 싣는 이준석 선장(왼쪽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모습. 해외
 여객선들은 출항 직전 또는 직후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비상탈출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원들은 출항 때마다 선장의 
지휘하에 진행되는 훈련을 통해 승객들을 보호하고 책임질 시맨십을 함양한다. 해경 제공 동영상 캡처·구글 캡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들을 뒤로하고 구조선에 가장 먼저 몸을 싣는 이준석 선장(왼쪽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모습. 해외 여객선들은 출항 직전 또는 직후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비상탈출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원들은 출항 때마다 선장의 지휘하에 진행되는 훈련을 통해 승객들을 보호하고 책임질 시맨십을 함양한다. 해경 제공 동영상 캡처·구글 캡처
지난달 16일 오전 9시 28분. 선장은 팬티 차림이었다. 물에 빠질 때에 대비한 것일까. 그는 신발까지 벗고 배 위에서 대기하다 구조선이 다가오자 제일 먼저 뛰어올랐다. 국내외 선박 사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선장이 ‘1호 탈출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어 배 안의 사람들이 속속 구조선에 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은 모두 선원이었다. 사고 13일 만에 해경이 공개한 구조 동영상에 적나라하게 잡힌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원들의 모습에서 승객들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져야 할 ‘시맨십(seamanship·뱃사람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맨십 실종의 참극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참사는 결국 선장과 선원들의 시맨십 결여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본래 시맨십의 사전적 정의는 배를 모는 ‘기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의미가 넓어져 기술뿐만 아니라 선원이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와 정신까지 아우르는 표현이 됐다. 일본에서는 시맨십의 조건으로 △예지력 △확실성 △신속성 △절도 △스파르타 △모험심을 꼽기도 한다. 시맨십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선원으로서 ‘배와 배에 탄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려는 의식’을 의미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선원들에게 이런 시맨십은 없었다. 왜 매뉴얼대로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세월호 조타수는 “지킬 상황이 안 되잖아요. (배가 침몰하는데) 객실에 어떻게 갑니까. 진짜 이 양반들 희한한 양반들이네”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다. 이 선장은 승객들을 버리고 홀로 탈출한 것도 모자라 뭍에 내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통곡하는 실종자 가족을 뒤로한 채 물에 젖은 돈을 말리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에게 시맨십은 고사하고 직업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그 ‘기본’이 세월호 선원들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세월호 선원 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인 훈련 및 교육이 부재(不在)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리더십의 교본인 어니스트 섀클턴 경 같은 높은 책임감과 고매한 희생정신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섀클턴 경은 영국인으로 20세기 초 남극탐험시대의 영웅. 남극 대륙에서 배가 난파했으나 그는 대원 27명을 이끌고 혹독한 추위 속에 무려 634일 동안 스스로 구조의 길을 개척해 모두 살려 냈다.

그러나 모든 선원이 이럴 수는 없기에 결국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으로 시맨십을 길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험을 보면 답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뉴얼을 아는 사람이더라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머리나 논리가 아닌, 몸의 반사신경대로 행동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라며 “비상 매뉴얼을 몸으로 익혀 머리보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훈련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시맨십 기르기엔 국내 여건 열악

국내 여객선사들은 법에 따라 비상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주기적인 훈련을 진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참사를 야기한 청해진해운조차 매뉴얼상으로는 꽤 그럴싸한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매뉴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국내 여객선사들의 실전훈련이 어쩌다 가끔, 그나마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국내 D여객선사 관계자는 “현재 (인명사고 관련) 대응훈련은 6개월마다 하고 있다”며 “실제 훈련이라기보다는 가상으로 상황을 설정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객선사 관계자는 “교육은 외부 교육, 훈련은 자체 훈련으로 알아서 진행한다”며 “법이 그렇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T여객선사 사장은 재무제표에 드러난 교육비가 적다는 지적에 “해운조합에 조합비를 내고 위탁교육을 하기 때문에 회계상 교육비가 잡히지 않는 것뿐이지 교육을 안 하는 선사는 없다. 교육을 안 받으면 선원이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선원들은 선원이 될 때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5일간 기초안전교육을 받고 이후에는 5년마다 한 번씩만 훈련을 받는다”며 “그나마 두 번째 훈련부터는 교육기간이 2일로 줄어든다”고 귀띔했다. 실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세월호 일부 선원은 “안전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전훈련이 문서로, 머리로만 진행되는 현실에서 시맨십 함양은 요원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나 교수는 “시맨십은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길러지는 것”이라며 “반복적인 실제 훈련을 통해 시맨십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의 시맨십 훈련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의 안전훈련 시스템은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해외 대형 여객선사들의 경우 세월호보다 작은 규모의 배에서조차 비상대피훈련을 출항 때마다 반복해 실제로 진행한다. 이 비상대피훈련은 배의 출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로 선장과 선원뿐 아니라 승객까지 배에 탄 모든 이가 참여한다.

한 예로 미국의 여객선사인 카니발 크루즈 라인의 비상훈련 과정은 해외 여객선사들이 얼마나 안전훈련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선사의 여객선은 일단 승객들이 모두 배에 탑승하면 출항과 동시에 선장의 지휘 아래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선상 비상훈련을 시작한다. 승객들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각자의 객실 내에 비치된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 위에 지정된 장소로 모여야 한다. 아이들이라도 예외는 없다. △선박 내 구명정 위치 △객실에서부터 구명정까지의 이동경로 △구명정 펼치는 법은 필수 교육 내용에 해당한다.

승무원들은 비상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승객들을 어디로 이동시켜야 하는지 등을 정확히 알고 있다. 어떤 루트로 가야 가장 빠르고 원활하게 탈출할 수 있는지 매뉴얼대로 승객들을 인도한다. 배에 탄 이들, 특히 선원들은 출항 때마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30분짜리 이 훈련을 통해 시맨십을 몸으로 체득한다.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해외 여객선사들의 안전훈련은 2012년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고 이후 더욱 강화됐다. 콩코르디아호 사고는 선장이 여객선을 버리고 도주해 268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고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외 여객선 업계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스스로 의무화했다.

실전훈련 반복해 시맨십 키워야

전문가들은 만약 이 같은 훈련이 세월호에서도 매번 실제로 진행됐다면 선장의 직접적인 퇴선 명령이 없었더라도 선원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일단 승객들을 갑판 위로 대피시켰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승무원들조차 평소 이런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월호에서는 그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방송밖에 나올 수 없었다.

세계여객안전협회의 로베르타 웨이스브로드 이사는 “배 안에 물이 들어차는 상황은 즉각적인 퇴선이 필요한,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이는 선장뿐 아니라 모든 선원에 대한 기본교육에서 다뤄지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반복적인 비상대응훈련이 시맨십 함양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매년 14.5시간을 투자해 실전 같은 훈련을 펼치는 항공업계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아시아나 항공기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불시착 사고 당시 승객을 구조하는 활약을 펼쳐 화제가 된 여승무원은 “비상 상황에 대한 훈련을 매년 받기 때문에 훈련받은 대로 비상탈출을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나 자신의)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영수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는 “최근 개정된 국제협약들은 선장과 선원들의 정신력 강화 교육을 위한 교과목 신설 및 훈련 실시를 제시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장원재
부산=조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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