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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스님 “박헌영 아들… 아버지의 운명에 의해 사는 것도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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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스님 “박헌영 아들… 아버지의 운명에 의해 사는 것도 내 운명”

동아일보입력 2014-04-11 03:00수정 2014-04-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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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유일 혈육 원경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선출
9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된 원경 스님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위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충실히 지키며 살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무지렁이 빈승을 어른들이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른 지 54년이 됐습니다. 거의 한평생 부처님 품안에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제 삶을 그래도 조용하게 잘 살아왔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1956)이 월북 전 남한에 남긴 유일한 혈육 원경 스님(73)의 말이다. 스님은 9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밀운 스님)는 이날 원경 스님 원로의원 선출 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원로회의는 법랍 45년, 연령 70세 이상으로 자격기준이 제한돼 있으며 임기 10년의 단임이다. 25개 교구별로 1명씩을 두며 매우 까다로운 심사로 인준하고 있어 종단 내에서도 영예로운 자리로 여기고 있다.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두 번째 부인 정순년 씨가 낳은 아들로 부친이 잠적한 뒤 어머니와도 헤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열 살 때 한산 스님을 만나 화엄사에서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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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스님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평생을 이념 갈등 속에서 살아 두렵고,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까 무서워하며 살아왔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경우도 있어 항상 조심했습니다. 세속을 벗어나 수행승으로 살면서도 조심하는 것은 몸에 배었습니다.”

원경 스님의 부친에 대한 기억은 짧다. 여섯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렸을 때 두 번 정도 품에 안긴 기억 정도만 난다고 했다.

스님은 부친으로 인해 삶이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저는 물론 주변 분들이 고통받을 때가 있어 괴로웠지만 ‘아버지의 운명에 의해 사는 것도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걸 놓아 버리니 편해졌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보호자였던 한산 스님 등의 조언으로 부친의 흔적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2004년까지 부친의 삶을 정리한 책을 9권으로 묶어 냈고, 2010년에는 시집 ‘못다 부른 노래’를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만화를 통해 ‘경성 아리랑-무덤도 꽃다발도 없는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만화는 아버님을 포함해 온몸으로 일제강점기에 맞선 20, 30대의 젊은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경 스님은 최근 혈육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박헌영의 첫 부인에게서 태어난 누나 박비비안나 씨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별세한 것. 생전 비비안나 씨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부친의 세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나타샤와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두 동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 문제로 누님이 세상을 뜬 지 10일쯤 지나 모스크바 무덤에 갔습니다. 제가 스님이니 옛 기억을 그리며 묘소에서 혼을 위로했어요. 아버님은 물론 모든 주변 분들의 삶을 위로하면서 살 생각입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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