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95>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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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

우리 언니는 시를 쓰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았던 엄마를 닮아,
역시 시를 쓰지 않았던 아빠를 닮아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지붕 아래서 나는 안도한다.
언니의 남편은 시를 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제아무리 그 시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린다 해도
우리 친척들 중에 시 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언니의 서랍에는 오래 된 시도 없고,
언니의 가방에는 새로 쓴 시도 없다.
언니가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해도
시를 읽어 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끓인 수프는 특별한 사전 준비 없이도 그럴싸하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절대로 원고지 위에 엎질러질 염려가 없다.
가족 중에 시 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그런 가족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결국 시인이 나왔다면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법은 없다.
때때로 시란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대를 관통하여 폭포처럼 흘러간다.
우리 언니는 입으로 제법 괜찮은 산문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글쓰기는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온 엽서가 전부다.
엽서에는 매번 똑같은 약속이 적혀 있다.
돌아가면
얘기해 줄게.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대다수 시인이 공감할 시다. 방송작가거나 소설가라면 훨씬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텐데, 시인이란 가족에게도 낯설고 불편한 존재다. 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가족, 그중에서 평범한 주부인 언니를 애틋한 감정을 담아 잔잔히 그렸다. 요리 잘하고 다정하고 말도 감칠맛 나게 하는 언니. 우리 언니랑 똑같다!

화자는 시가 별 볼 일 없다 하면서 은근히 시의 대단함을 말한다. 시 없이도 살 수 있다. 잘 산다. 하지만 그 삶은 밋밋하기 쉽다. ‘감동의 감정’인 시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고 활기 없는 ‘산문적인 삶’의 강장제다. 그런데 때로 시는 평온한 가정에 풍파를 일으킨다. 시가 진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자주 진실은 추하다. 쉬쉬하고 덮어두었던 가족의 비밀, 집안의 상처를 헤집어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끝에 의절당하기도 하는 게 시인의 운명이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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