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것 없다”… 朴대통령 선긋기에 해법 못찾는 黨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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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댓글사건 이후 1년… 끝 안보이는 ‘대선 정쟁’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5만5689건’의 트위터 글 이후 확대일로로 치닫고 있다. 여론의 타깃이 점차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면서 사건 초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공정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 개혁에 치중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사태가 지금처럼 심각해진 원인을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여권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인식은 “국정원에 빚진 게 없다”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 말인가요” 등의 발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도움을 받았다는 야권의 주장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청와대 참모진과 새누리당 지도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작용했다는 것.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24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며 “지금은 대통령의 숨소리 하나로 정국의 방향이 정해지는 정권 초기라 청와대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여권 핵심부가 검찰 수사팀을 불신하면서 사태는 꼬이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팀이 원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여권 핵심부에선 수사팀이 야권의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진영 논리’가 팽배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이 불거진 것을 두고 야권 등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공작’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도 그 연장선이다. 채 총장이 사퇴하고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수사에서 배제되면서 외압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검찰 내부 분위기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벼려진 수사팀의 칼끝은 국정원의 폐부를 더욱 파고들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나올 경우 수사팀은 물론이고 검찰 지휘부가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검사들이 죽기 살기로 수사하지 않겠느냐”며 “어차피 물이 엎질러진 상황인데 검찰까지 신뢰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더 꼬였다”고 진단했다.

청와대 내에는 “어차피 야당은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정쟁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언급을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대통령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야당의 싸움에 말려들 뿐이다” 등 야당과의 기 싸움을 해야 한다는 논리만 파다하다. 그 가운데 정작 대선이 끝난 지 10개월 넘게 댓글 정쟁에서 허우적대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싸늘한 국민들의 시각은 염두에서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의 오버도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고 꼬집었다. 윤 수석부대표는 국정원이 올린 것으로 검찰이 파악한 5만5689건의 트윗과 리트윗의 수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국정원이 한 트윗은 2233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숫자는 검찰에 체포됐던 국정원 직원 2명이 자백한 것으로 수사팀과 지휘라인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이번 사건이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 아니라 심리전단 직원들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인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외압 논란으로 이어졌고, 국정원과 검찰 수뇌부가 여권 실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특히 윤석열 전 수사팀장(여주지청장)과 각을 세웠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지휘부도 국정원이 트윗하거나 리트윗한 건수가 5만5689건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여권의 입지는 좁아지는 형국이다.

국정원 문제로 야당과의 관계도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지난달 박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국회 회동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였지만, 양측 모두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야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댓글로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을 믿고 국정원 사건을 처리했다면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동정민 기자 leon@donga.com
#국정원 댓글사건#대선 정쟁#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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