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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쾌락이 아니라 살기 위해…” 성 중독자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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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쾌락이 아니라 살기 위해…” 성 중독자들의 절규

동아닷컴입력 2012-08-17 16:39수정 2012-08-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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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독자 자조(自助)모임 참여자들…성범죄자 처벌, 치료 병행해야
서울에 위치한 한 사무실(성중독자들이 모임 장소가 공개되길 원치 않아 자세한 위치 설명은 생략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가 되면 다양한 지역에 사는 성중독자 10여 명이 모인다. 자신의 성별에 따라 남자 성중독자 모임과 여자 성중독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익명의 성중독자 모임(Sex Addicts Anony- mous)’, 즉 SAA는 ‘성중독자들이 함께 모여 성중독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발족한 국제단체로 한국 SAA는 2010년 3월 결성했다.

SAA는 ‘자조(自助)’모임이기 때문에 성중독이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참여율은 들쭉날쭉하다. 참석자는 서로의 신상을 묻지 않는다. 이 모임은 구성원이 자기 아픔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으면 서로의 감정을 보듬으면서 치료를 돕는다. 대중은 성중독자를 ‘성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하지만 이들에게 성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절실한 사안이다.

엄마 사랑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해

최근 경남 통영에서 한아름(10) 양과 제주 올레길을 걷던 40대 여성이 살해되자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목소리가 높다. 결국 정치권은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전자발찌와 동일하게 3년 소급 적용하고, 취업 제한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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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범죄자를 관리, 감독하는 실무자들은 “정부 노력이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강력한 처벌정책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성범죄자를 가해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자는 성중독자 모임이 열리는 8월 3일 이곳을 찾았다. 성중독자를 만나면 성범죄자가 범죄를 일으키기 전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모든 성중독자가 성범죄자는 아니지만, 모든 성범죄자는 성중독자이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방문 전날 모임 후원자를 만나 참관 의사를 밝힌 터라 모임에 동석할 줄 알았지만 모임 참가자들이 거부했다. 결국 모임 후원자에게 며칠 동안 “성범죄자 실태를 파악하려면 성중독자를 만나야 한다”고 설득한 끝에 주인 모를 두 개의 휴대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8월 6일 서울에서 한 남자 성중독자를 만났다. 그는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카페에서 조용한 자리를 찾은 그에게 나이부터 묻자 이야기가 술술 이어졌다.

“28세다. 인터뷰에 응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가족도 모르는 내 실체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게 겁났다. 스스로를 성중독자라고 인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스스로를 가치 없게 여긴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크다.

자조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나 자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제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겠다 싶었다.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두려움은 커졌다. 모임에 나가면서 내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버이날을 맞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드렸는데 엄마가 ‘뭣 하러 만들어왔느냐’고 쏘아붙이며 화냈다.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입대할 때도 훈련소까지 배웅해줬을 뿐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엄마는 늘 내게 ‘너는 할 수 없어’ ‘너는 끈기가 없어’라고 말했고, 많이 때렸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된 인간인 줄 알았다. 아버지도 나를 방치했다. 격려받고 싶었지만 그런 경험을 나눈 적이 없다. 아버지는 단지 돈 벌어오는 기계였다.

하지만 엄마가 내게 아버지와의 문제를 털어놓으면 그것만은 열심히 들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끝내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싸우면 나는 내가 중재를 못한 탓인 것 같아 밤새 울었다.

인간관계도 맺기 어려웠다. 왕따가 되는 게 두려워 친구를 사귀긴 했지만 진심으로 대화하지 못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도, 먼저 연락을 한 적은 없다. 여자는 사귀지 못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자신감이 없어 고백도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한 성중독은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다. 밤새도록 음란물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학교에서는 잠만 잤다. 중독행위를 하고 나선 스스로에게 ‘병신 같은 새끼, 나가 뒈져버려’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나는 가치 없는 나에게 뭔가를 먹인다는 것 자체도 싫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나 자신은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끼니도 자주 걸렀다.

군 생활은 좋았다. 눈만 뜨면 얘기할 동료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때는 중독행위도 끊었다. 학교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나를 싫어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그 덕에 처음으로 책도 읽고, 인간답게 살자고 결심할 수 있었다.

뭔가를 하려면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에 주식투자를 했고 좋은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돈을 벌수록 불안해졌다. 문제는 돈을 벌면서 사창가에 자주 간다는 점이었다. 군 동기와 그곳에 다녀온 뒤 버릇이 됐다. 심하게 (욕정이) 올라오면 간다.”

취재를 마친 뒤 기자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준 그는 성중독자와 성범죄자를 연관짓는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자존감이 없는 소심한 사람이 반항하는 한 방법으로 성중독에 빠지고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면서 “나처럼 심리치료를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너 시간 뒤 32세 남자를 만났다. 고향이 부산인 그는 마침 서울에 와 있었다. 앳돼 보이는 그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취재가 시작됐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받은 명함을 구겼다 펴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2년 전부터 자조모임에 나가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지극히 사적인 얘기부터 시작했다.

7세 때부터 자위행위 시작

“자위행위를 7세 때 시작했다. 성기를 바닥에 비볐는데 분명 사정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심하게 때렸고, 그 뒤로 성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생겼다. 하지만 엄마 몰래 자위를 했고, 친척 여동생과 동네 여자아이들을 상대로 성에 탐닉했다. 초등학생 때도 자위를 하루에 서너 번씩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중학교 1학년인 동네 형 집에 놀러 갔다가 형의 성기를 빤 적도 있다. 냄새가 나고 기분이 나빴지만 형이 시키는 대로 하면 게임기를 갖고 놀게 해준다기에 억지로 했다. 고등학생 때 꼬마 여자아이에게 키스도 시도했다. 아이가 거절해 키스는 못했지만 그 애가 나 때문에 잘 자라지 못했을까봐 지금도 걱정된다.

가정환경은 남다르다. 엄마는 나를 임신한 채 알코올중독자였던 생부와 이혼했다. 엄마가 재혼하기 전까지 나는 친척집을 전전했는데, 한번은 이모가 외출할 때 나를 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두려움에 떤 적이 있다. 너무 무서워 결국 2층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옥상에서 떨어져 이틀 동안 의식불명이 된 적도 있다. 당시 병원에서 깨어나 엄마를 찾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의 사랑이 늘 부족했다.

재혼한 엄마는 새아버지에게 ‘왜 내가 낳은 아들을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따졌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자녀 모두에게 무심하게 대했다. 엄마는 내가 여섯 살 때 버릇이 없다며 벨트로 때렸다. 도시락도 한 가지 반찬만으로 싸줬다. 단무지면 단무지, 김치면 김치. 엄마에게 불평하면 ‘네가 나를 힘들게 한다’ ‘너는 나를 닮아서 끈기가 없다’는 말을 쏟아내기 때문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군생활은 힘들었다. 선임이 1년 3개월 동안 30분씩 따로 불러 나의 무능을 비판하자, 엄마가 한 말이 떠올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군 동기와 사창가에 가기 시작했고, 그 후 중독행위가 더 심해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누군가 나를 질책하면 쉽게 사표를 썼는데,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루에 사창가나 키스방을 서너 번씩 갔다. 성행위를 하고 나면 아기가 엄마 젖을 물듯 여자 가슴을 빨았다. 여자친구를 딱 한 번 사귀긴 했지만 헤어졌고, 지금도 사창가를 다녀 빚이 500만 원이나 된다.”

취재를 마친 그에게 다른 성중독자를 소개해주길 부탁했지만 처음 만난 성중독자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이 내용을 공개하길 원치 않는다”며 곤란해했다.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그를 뒤로하고, 수소문 끝에 8월 7일 서울에 사는 33세 여자 성중독자를 만났다. 그가 원한 대로 성중독자 자조모임을 진행하는 폐쇄된 장소에서 만났다.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명함에 낙서를 시작한 그가 “내 꿈은 술집에 취직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성적을 사랑한 부모님

“만나봐서 알겠지만 성중독자들은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 나도 그렇다.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엄마를 아빠가 억지로 집에 데려와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나를 키우게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내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돌봐주지 않아 아빠가 달래줬다고 한다. 게다가 아빠는 6세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침대에 함께 누워 내 가슴을 만지면서 성노리개 취급을 했다. 내 몸을 누군가가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됐고 그 행위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안 뒤 아빠를 피했다. 엄마는 이런 행동을 보고도 방관했다.

자위행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평소처럼 외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오자 죽일 듯이 때렸다. 한번은 초등학생 때 쪽지시험에서 10개 중 1개만 맞혀왔더니 며칠 동안 미친 듯이 때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친구관계도 일일이 간섭했다.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에게 연락해 ‘내 딸은 공부해야 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통보할 정도였다.

부모는 내가 아닌 내 성적을 사랑했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공부중독이었다. 내 꿈은 최고 높이인 1등을 하고 나서 자살하는 것이었다. 관계 맺기가 두려워 학원에 가지 않고 학교와 도서관만 오갔고, 밥도 늘 내 방에서 혼자 먹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부모가 모든 걸 용인했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자 부모의 멸시가 시작됐다.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남자에게 빠져들었다. 미친 듯이 남자를 만나고 자살하고 싶었다. 예쁘게 생긴 엄마가 아빠를 비롯한 남자들에게 아양 떨며 사랑받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남자를 만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바람피운 엄마는 외박하는 내게 뭐라 하지 못했다.

나는 살기 위해 섹스를 했다.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남자가 나를 품에 안아주면 아빠가 나를 만져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채팅으로 만난 남자가 술값 내고 모텔비 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22세부터 30세까지 남자 200여 명과 섹스를 하면서 오래 만나는 남자도 생겼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남자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생각하니 누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술집에서 일하고 싶어도 자존감이 없어 면접을 못 할 정도니 이해되나. 내가 스스로를 하찮게 대하듯, 나를 쉽게 여기는 남자가 편했다.

섹스 후 헤어지면 천벌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고도 밤이 되면 채팅창을 열고 낯선 남자를 만나러 나갔다. 갓난아기가 깜깜한 길바닥에 놓인 것처럼 두려운 감정이 들어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섹스를 쾌감 때문에 한 게 아니다. 몇 달 동안 굶어서 먹을거리가 없을 때 쓰레기라도 먹어야 하는 심정으로 섹스를 찾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치료를 받으면서 섹스를 끊었고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

살기 위해 섹스에 빠져

“취재에 응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그에게 성범죄자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머뭇거리던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레 답했다.

“나도 성범죄자는 무섭다. 하지만 당신이 날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생각이 다르듯이 성범죄자를 직접 만나면 시각이 달라질 것 같다. 성범죄자가 살아온 인생을 똑같이 살게 된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치료를 병행하지 않으면 중독행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치료받기 전에 섹스 괴물처럼 살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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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2년 8월21일자 8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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