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자인 코리안 영 파워]<1>뉴욕 ‘Why Not Smile’의 김정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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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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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제품과 기업, 사회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시대. 한국 디자인의 주소는 아직 세계 시장의 변방이지만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있다. 좁은 울을 뛰쳐나가 세계의 일류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젊은 해외파 디자이너들을 소개한다.》

또렷이 그려진 세 개의 삼각형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한 모습으로 서 있는 ‘A’자와 ‘W’자가 보이는가.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김정훈 씨는 보일 듯 말 듯 예술과 세상을 잇 는다는 콘셉트의 이 디자인으로 46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전담기관인 국립예술기금(NEA) 브랜드 엠블럼을 바꿨다. 바뀐 세상의 요구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넣은 것도 김 씨가 포인트를 둔 요소다. 사진 제공 WhyNotSmile
또렷이 그려진 세 개의 삼각형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한 모습으로 서 있는 ‘A’자와 ‘W’자가 보이는가.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김정훈 씨는 보일 듯 말 듯 예술과 세상을 잇 는다는 콘셉트의 이 디자인으로 46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전담기관인 국립예술기금(NEA) 브랜드 엠블럼을 바꿨다. 바뀐 세상의 요구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넣은 것도 김 씨가 포인트를 둔 요소다. 사진 제공 WhyNotSmile
김정훈 씨가 디자인한 ‘보이스 비주얼라이저(voice visualizer)’.음색과 볼륨 등 소리의 성질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장치다.사진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김정훈 씨가 디자인한 ‘보이스 비주얼라이저(voice visualizer)’.음색과 볼륨 등 소리의 성질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장치다.사진 제공 한국디자인진흥원
흰색 바탕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세 개의 정삼각형.

‘ART WORKS.’라고 쓴 고딕체 문구 위에 하나는 똑바로, 두 개는 거꾸로 삼각형을 올려놓았다. 얼핏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 디자인은 미국 국립예술기금(NEA·The US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이 올해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공식 브랜드 엠블럼이다. 지난해 650여 개 디자인 업체가 경쟁한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 디자인의 주인공은 한국인 김정훈 씨(34). 젊은 한국 디자이너가 2008년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사무실에 차린 직원 3명의 디자인 회사 ‘Why Not Smile’이 미국 문화예술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 정부기관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NEA가 공식 브랜드를 교체한 것은 1965년 설립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15일 이 디자인을 공개한 NEA는 2월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에서 브랜드 리뉴얼 선포식을 열 예정이다.

김 씨는 4일 오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워낙 대규모 공모전이라 뽑힐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보고 작업 기간을 3일로 한정해 진행한 작품이었다. 진입 장벽에 대한 부담을 잊고 과감하게 진보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만 이름난 회사면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달려들었는데요. 솔직히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우리는 안 뽑아줄 것 같았죠. 포기할 수는 없지만 많은 시간을 들일 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모전 디자인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클라이언트와의 공격적 토론과 협의 프로세스를 가상으로 설정해 작업 효율을 높였죠.”

‘ART WORKS’는 원래 NEA의 보조 브랜드였다. 이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이 공모전의 원래 취지였지만 당선작을 재검토한 NEA는 아예 공식 대표 브랜드를 통째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디자인의 핵심은 일렬로 늘어놓은 세 개의 삼각형에 의해 보일 듯 말 듯 배경에 만들어진 알파벳 ‘A’자와 ‘W’자의 은근한 실루엣이다. 각각 ‘Art’와 ‘Works’의 머리글자인 이 두 알파벳은 보이는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예술과 사회의 괴리를 이어내는 NEA의 역할과 존재의의를 표상한다. 김 씨는 여기에 전에 없었던 ‘마침표’를 WORKS 뒤에 덧붙여 여러 가지 함의로 풀이될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을 이루도록 제안했다.

“예술이 작용한다, 예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 예술이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이 주어진 것이죠. 점 하나 더 찍은 가벼운 변화로 여길 수 있겠지만, 나란히 따로 서 있던 두 단어가 하나의 문장을 이룬 것은 간단한 차이가 아닙니다.”

맨 아래 쓰여 있던 NEA의 풀 네임을 인터넷 사이트 주소인 ‘arts.gov’로 바꾼 것도 NEA가 예술 또는 관련 종사자만을 위한 기관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한 변화다. 김 씨는 “사이트 주소만 봐도 이 이미지가 ‘예술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의 시그널’이라는 메시지는 누구나 얻을 수 있다. 온라인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정보를 간단한 손질로 덧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삼각형의 색깔은 하나의 조합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대표이미지의 빨강 파랑 노랑은 솔 르윗의 ‘Isometric Figure with Bars of Color’라는 작품에서 가져왔다.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잭슨 폴록의 ‘수렴’, 피카소의 ‘게르니카’…. 설명 자료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에서 대표 색을 가져온 예만 들었지만 조합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엠블럼이 필요한 행사나 작업의 성격 또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꿔 상황에 녹아드는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이런 유연한 디자인 개념에는 ‘가상의 클라이언트’ 역할을 한 김 씨의 디자인 가치관이 녹아 있다. 그는 “보통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디자이너가 요리사나 영화감독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어진 재료를 최선의 상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이야기. ‘영향을 준 디자이너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그는 “소소한 일상에서 늘 최선의 조합과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준,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라고 답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몇몇 디자인회사를 옮겨 다니던 김 씨는 “할 수 있도록 허용된 일의 한계를 느끼고” 유학을 떠났다. 직접적으로 꼭 ‘돈’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공공 영역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고향을 등진 이유가 됐다.

“한국에서도 공공 영역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만약 이번 NEA 프로젝트와 비슷한 공모전이 한국에서 열렸다면 저는 아마 참가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정부 관련 공모는 참가 업체의 경력과 규모에 대한 제한이 엄격하거든요.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밖에서 더 많은 모험을 만나고 싶습니다. 언젠가 모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정훈 대표는::


○ 2003년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 2006, 2008년 한국디자인진흥원 선정 ‘차세대 디자인 리더’
○ 2008년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학원 그래픽디자인전공 예술학석사(MFA)
○ 2008년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Why Not Smile’ 대표, 미국그래픽협회(AIGA) ‘Best 50 Books’상, 미국 타이포디렉터스클럽(TDC)어워드 우수타이포그래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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