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우리 대학 스타/해외명문대학원 입학 제조기 조명석 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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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7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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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생 꿈’ 노크하면 열립니다

“지방대생들이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바로 해외 유학이었지요.”

조명석 강릉원주대 교수(57·전자공학과·사진)는 2006년 유명인사가 됐다. 이 해에 전자공학과 학생 14명을 미국 명문대학원에 합격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조 교수의 ‘학벌 뒤집기 프로젝트’를 집중 조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유명 대학원은 고사하고 국내 유명 대학원 진학조차 힘들었던 지방대 학생들이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조 교수가 학생들의 해외 유학을 생각한 것은 1991년 부임하면서부터. 신설학과(당시 반도체공학과)라는 기대감을 안고 강릉에 왔지만 학과의 틀이 잡히지 않은 탓에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우리는 지방대생’이라는 학생들의 열등감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1996년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러나 주위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당사자인 학생들조차 “말도 안 된다”며 무관심했다. 조 교수가 2007년 펴낸 책 ‘강릉대 아이들 미국 명문대학원을 점령하다’에는 그때의 심정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아한 표정으로 생뚱맞게 쳐다보던 학생들의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아마도 내 평생 처음 해보는 웃기지 않는 개그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 개그맨을 쳐다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얼마나 냉소로 가득 찼던지.’

그는 이때 유학에 뜻을 보인 복학생 1명에게 교육을 집중했다. 6개월가량 토플과 미국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준비에 매달렸고, 그해 말 미국 명문대학원 10여 곳에 원서를 보냈다. 이 가운데 워싱턴대와 남가주대 대학원 두 곳에서 입학허가서가 날아 왔다. 강릉대 전자공학과 출신 제1호 미국 명문대학원생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0년과 2002년에도 1명씩을 합격시켰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주위의 시선은 ‘운이 좋았다’거나 ‘특별한 학생이겠지’하는 식이었다. 2003년 3명의 학생이 동시에 합격하고 나서야 주위의 반응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을 고3 수험생처럼 공부시켰다. 학과 독서실을 마련해 24시간 개방했고, 방학 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어공부에 집중했다. 2004년에도 3명에 이어 2005년 10명, 2006년엔 무려 14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들 가운데는 장학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7명, 2008년 3명, 2009년 2명으로 합격생이 줄어들었다. 조 교수가 1년간 안식년을 보낸 것이 결정타였다. 조 교수는 이 기간에 책을 쓰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지만 정착 단계였던 프로젝트는 흔들린 셈이다. 그는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해외유학 동아리 SAC(study abroad club)를 만들어 학생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40여 명의 학생들이 이 동아리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조 교수에게는 유학 상담을 원하는 전화나 e메일이 자주 온다. 주로 지방대생들과 학부모들이다. 조 교수는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제2의 기회를 꼭 잡으세요. 실력으로 학벌을 뒤집으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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