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노래 듣고 암 이겨내세요” 열한살 섬소년 열창에 바다도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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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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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신동 조기흠 군
완도 모황도서 단 세식구 생활
아빠와 배타고 통학하며 노래
TV쇼 출연후 지역 스타로

전남 완도읍에서 12㎞ 떨어진 모황도의 주민은 3명뿐이다. ‘트로트 신동’ 조기흠 군과 조 군의 엄마, 아빠가 전부다. 기흠 군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매일 트로트를 부른다. 15일 다리를 다쳐 병원에서 한 달 보름 만에 퇴원한 어머니를 위해 기흠 군이 집 앞 방파제에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부르고 있다. 모황도(완도)=박영철 기자
전남 완도읍에서 12㎞ 떨어진 모황도의 주민은 3명뿐이다. ‘트로트 신동’ 조기흠 군과 조 군의 엄마, 아빠가 전부다. 기흠 군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매일 트로트를 부른다. 15일 다리를 다쳐 병원에서 한 달 보름 만에 퇴원한 어머니를 위해 기흠 군이 집 앞 방파제에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부르고 있다. 모황도(완도)=박영철 기자
열한 살 소년은 엄마한테 왜 오른쪽 가슴이 없는지를 한동안 몰랐다. 소년이 엄마가 유방암 때문에 한쪽 가슴을 잃었다는 것을 안 것은 3년 전이었다.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안 소년은 엄마 가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엄마의 병이 꼭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조기흠 군(11)은 전남 완도군 신지면 모황도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완도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모황도는 면적이 0.13km²로 축구장 18개 크기의 작은 섬이다. 이 섬에는 기흠이네 식구밖에 없다. 한때 7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떠났다.

15일 오후 신지면 가인나루터. 기흠이는 방파제 기둥에 묶인 밧줄을 잽싸게 풀고 3t짜리 배에 올라탔다. 배가 나루터를 빠져나오자 기흠이는 아버지 조양배 씨(57)를 대신해 키를 잡았다.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기흠이의 운전 솜씨는 여느 뱃사람 못지않았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모황도. 기흠이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어머니 최숙자 씨(56)의 손을 이끌었다. 마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더니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기흠이는 “엄마 제가 마련한 퇴원 기념 콘서트예요. 오랜만에 노래 들으니까 좋지”라며 웃었다. 최 씨는 배에서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뼈를 다쳐 한 달 보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퇴원했다.

기흠이는 모황도에서 5km 떨어진 신지동초등학교에 다닌다. 전교생 62명 가운데 배로 통학하는 유일한 학생이다. 기흠이는 학교에서 ‘스타킹’으로 통한다. 올해 SBS TV 인기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3차례 연속 우승한 뒤 얻은 별명이다.

1월 설날 특집 때 처음 출연한 기흠이는 나훈아의 ‘어매’를 애절하게 불러 방청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3연승에 성공해 받은 500만 원은 엄마 병원비와 약값으로 모두 썼다. 기흠이는 7일 스타킹 왕중왕전에 출연해 가수 태진아, 박현빈, 카라 등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태진아 씨는 녹화를 마친 뒤 “음을 소화하는 능력이 탁월해 잘 다듬으면 큰 가수가 될 재목”이라며 “무엇보다 효심이 지극한 아이여서 정이 더 간다”며 선뜻 200만 원을 건넸다.

기흠이가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낚시꾼들이 섬에 남겨놓고 간 테이프를 들으면서부터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친구 없이 지내는 기흠이의 유일한 벗이 됐다. 뒷산의 염소와 사슴을 찾아다니거나 달래와 쑥을 캐며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게 놀이이자 공부였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가 10월 9일 조기흠 군에게 발급해준 회원증.
한국연예예술인협회가 10월 9일 조기흠 군에게 발급해준 회원증.
매일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통학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고스란히 실력으로 이어졌다. ‘트로트 신동’이란 소문이 나면서 면민의 날이나 지역축제 등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 단골손님이 됐다. 기흠이는 10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정식 가수가 됐다. 후원자도 생겼다. 인근 금일도에 사는 전직 가수 김성룡 씨(64)가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서 틈나는 대로 노래를 가르치고 행사 때도 함께 다닌다.

기흠이 아버지는 “태진아 씨가 준 격려금으로 중고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기흠이가 집 수리비에 보태 쓰라고 해 눈물이 났다”며 “엄마 약을 꼭 챙겨주고 낚시로 잡은 감성돔을 담임선생님에게 갖다드릴 정도로 대견스러운 아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섬에서 엄마, 아빠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외딴섬에서 들꽃처럼 사는 기흠이의 소박한 꿈이다.

모황도(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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