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05>‘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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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지은보덕(知恩報德)
日합작사와 끈끈한 파트너십
다이니혼 회장 낡은 양복에 감동
‘은혜를 덕으로 갚는다’ 정신 배워

여러 국가의 기업체와 합작을 했지만 일본과 가장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상대를 대하려 노력하는 내 경영 철학과 철저하고 정확한 일본의 국민성이 잘 어울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제1차 오일 쇼크 당시 원료를 제공해 공장 불이 꺼지기 일보 직전의 애경을 구원한 인연을 계기로 미쓰비시(三菱)가스화학과는 지금까지도 합작관계이다. 다이니혼(大日本)잉크화학공업은 우리 제품의 실수요자이며 이토추(伊藤忠)상사와는 무역상대회사로 1975년부터 합작 계약을 맺었다.

이 일본 회사들은 국제시세가 비싸 우리가 불리할 때는 시세보다 싸게 공급했다. 우리가 생산물량이 많아 재고가 쌓일 것 같으면 계약보다 더 많이 구입하고 부족하면 채워주는 등 아낌없는 도움을 줬다. 특히 이토추상사는 우리가 1989년 11월 러시아에 포인트 비누와 크린티 치약 등 생필품을 처음 수출하는 길을 열어줬고, 수출 상대국에서 소비재를 원하면 일단 애경의 제품을 연결하는 등 파트너로서 최고의 대우를 했다.

이 일본 파트너들은 한일관계가 어렵게 돌아갈 때도 “국가적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까지 연결하지 말고 우리 관계를 계속 유지해가자”고 먼저 제의하는 등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인연 덕분에 이들 회사의 대표와는 회사 대 회사 차원을 넘어 개인적인 친분관계로도 발전했다. 내가 일가친척 외에 유일하게 우리 집에 초대하는 공적인 손님이 이들이다. 이렇게 교류가 잦다 보니 회사 일뿐 아니라 서로의 가정사, 자식 일까지 소상하게 알 정도로 가깝다.

애경화학은 1979년 다이니혼잉크화학공업과 합작하면서 탄생했다. 합작 파트너 회사 사장이 여사장이라니까 신기했는지 나를 한번 보고 싶다며 할아버지 회장이 만남을 제의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는데 멀리서 서류가방도 아닌 보자기를 옆구리에 낀 노인이 빛바랜 양복을 입고 걸어왔다. “설마 저분이 회장일까…” 했는데 내게 인사를 했다. 깜짝 놀랐다. 화학 분야에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 회장이 그렇게 검소한 모습이라니. 일본이 왜 잘사는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날 입고 온 양복바지는 영국에서 젊은 시절 유학하면서 샀다고 했다. 바짓단을 여러 번 다시 내서 해질 때까지 입는 억만장자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 쓸데없는 허세로 느껴졌다.

미쓰비시가스화학 사장 부부를 만났을 때 역시 느낀 점이 적지 않았다. 사장 부인과 악수를 했는데 손이 뻣뻣하고 거친 정도가 매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더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부인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온갖 집안일을 손수 한다고 했다. 그들의 집을 방문하니 우리나라 과장급의 집보다 작고 초라했다.

그들이 자신 중심으로만 인생을 살아왔다면 회사를 그렇게 크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 생활을 기꺼이 희생하며 회사를 위해 노력한 그들에게 배운 점이 많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하며 자신에게 혹독해야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내 방에는 다이니혼잉크화학공업의 할아버지 회장이 선물한 ‘知恩報德(지은보덕)’이라는 글이 한동안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은혜를 알고 덕으로 갚는다는 뜻이다. 내 자신이 약해지려고 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글을 보며 지혜를 얻곤 했다.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는 일도, 그것을 덕으로 갚는 일도 힘들다. 나는 이를 ‘상대에 대한 진심과 성실’로 풀이하고 싶다. 진심과 성실한 마음이 있는 한 은혜를 잊지 않고, 진심과 성실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체가 덕이 될 수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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