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81>‘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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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비누로는 국내 처음으로 1956년 1월 생산된 ‘미향비누’. 애경은 민족 자본과 우리 기술로 이룩한 성공적인 제조업체로 1960년대 대표적인 산업시찰지였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화장비누로는 국내 처음으로 1956년 1월 생산된 ‘미향비누’. 애경은 민족 자본과 우리 기술로 이룩한 성공적인 제조업체로 1960년대 대표적인 산업시찰지였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4> 화복(禍福)은 꼬아놓은 새끼줄과 같다

트리오 성공으로 직원 8배 늘어
사업 잘될때 찾아온 남편의 죽음
절망과 싸우기보다 희망과 악수

행복과 불행은 우리 삶에 매복했다가 뜻하지 않을 때 찾아들곤 한다. 애경 역사의 첫 번째 시련으로 기억되는 1970년, 창업주인 남편의 작고가 그러했다. 승승장구하던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타계하자 업계에서는 애경이 얼마 안 가 좌초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훗날 애경 역사 55년에 걸쳐 ‘제2의 창업기’로 기록되며 도약의 전기가 된다.

1960년대 애경은 전쟁의 폐허 속에 민족 자본과 우리 기술로 이룩한 성공적인 제조업체로 인정받았고 동양맥주와 함께 국내 최초의 산업시찰 장소로 선정되는 등 국내 산업시설의 대표적 위치를 차지했다.

1960년대 초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라는 바람을 타고 새 비누 업체가 속속 생겨나면서 비누의 원료인 우지 가격이 심하게 변동했고 곧이어 비누파동을 초래했다. 우지원료 확보 부족으로 비누 공급량이 줄어들자 소비자의 비누 사재기가 늘고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비누 가격 폭등으로 상공부 장관 사퇴설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1960년대 한국에서 비누 산업의 중요도를 짐작할 만하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애경유지는 인천공장을 폐쇄하고 영등포 공장을 개선 확장해 생산을 단일화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몽사봉 연속 비누화공정과 이탈리아의 마조니 연속 성형시설을 도입해 비누를 수동식으로 한장 한장 찍어내던 기존의 원시적 공정에서 자동화된 일관 공정 작업태세를 갖췄다.

자동화된 공장시설을 갖춘 애경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 국내 첫 화장비누인 미향비누 외에도 흑사탕비누 레몬비누 투명비누 벌꿀배합비누와 유색비누인 로맨스부라보 등의 신제품을 차례로 시장에 내놓으며 국내시장을 동산유지와 양분하기에 이르렀다. 또 1962년 영등포 비누공장 준공과 함께 처음으로 외국 기술을 도입해 서독의 라이홀드사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제조 기술협정을 체결했다. ‘호마이카’로 불리는 수지를 바른 장롱은 당시 결혼 필수품으로 꼽히는 등 국내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66년에는 주방용 세제론 국내에서 처음인 ‘트리오’를 개발해 내놨다. 트리오는 발매 4년 만에 생산량이 18배로 늘어나며 급격하게 성장했다. 지금도 트리오는 애경의 대표적 장수 제품이자 주방세제의 일반명사로 널리 쓰인다. 트리오의 성공으로 직원은 창립 당시보다 8배로 늘었다.

그때까지 설거지를 할 때는 짚이나 콩깍지를 태운 잿물이나 녹두가루, 심지어 모래와 흙까지 동원됐으나 트리오가 나오면서 설거지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설거지의 고충이 일시에 사라졌다. 기생충으로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불량하던 시절 과일이나 채소를 트리오로 깨끗이 씻으면서 국민건강 개선에 기여했는데 이 같은 공로로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트리오를 우수 추천품으로 지정했다.

이와 같이 사세가 승승장구하던 1960년대를 마치고 1970년대를 맞이하면서 애경은 창업 이후 첫 시련을 맞게 됐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과 함께 방황하던 애경이라는 배에 내가 올라타 다시 방향타를 잡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늘날 여기까지 흘러왔다. 인간만사 새옹지마요, 화복(禍福)은 마치 꼬아놓은 새끼줄과도 같아 행복과 불행이 함께 일어나며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타계야말로 이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느끼게 했다.

한창 사업이 잘될 때 찾아온 남편의 죽음. 그것은 맑은 날만 계속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했다. 그 섭리는 내게 절망만을 가져다주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희망과 절망, 맑은 날과 흐린 날, 흑과 백이 언제나 공존하는 게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찾아오는데 좋은 일이 올 때는 교만하게 날뛰지 말고 나쁜 일이 올 때는 정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 힘들수록 절망과 싸우기보다는 희망의 저울에 무게를 싣는 지혜가 필요하다.

뛰어난 상술과 인간미를 겸비했던 남편이 살아 있었더라면 오늘날 애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만약 내가 당시 사람들의 만류를 받아들여 경영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오늘날 애경은 어떤 모습일까.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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