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설 ‘불모지대’ 실제모델 세지마 씨 사망

  • 입력 200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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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참모로 활약했고 전후(戰後)에는 일본 재계와 정계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사진) 전 이토추(伊藤忠)종합상사 회장이 4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95세.

그는 평생 정보를 주무르고 기획하는 ‘참모’의 역할을 활용해 인정을 받았다. 1938년 일본 육군대학을 수석 졸업한 뒤 일본군 대본영의 육군 참모로 전쟁 지휘의 중추부에 있었던 그는 만주에서 종전을 맞고 소련군 포로가 돼 11년간 억류생활을 했다.

1956년 가까스로 일본에 돌아와 2년 뒤 46세의 나이에 이토추상사 항공기부 촉탁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 회사에 참모 조직을 도입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수집한 정보력을 이용해 섬유 수출업체에 불과했던 이토추를 세계적인 종합상사로 끌어올렸다.

입사 4년 뒤 이사로 취임하고 1978년부터 10년간은 회장을 지내며 주로 타사와의 제휴 합병을 주도했고 “매일의 장사에 쫓기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다른 회사와 거래하는 기법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육군참모본부 조직을 모델로 사내에서도 직속 부하를 거느려 ‘세지마 기관(機關)’이라 불렸다. 1973년에는 신문 기사만 보고 세계적인 오일 쇼크를 예측해 석유를 비축하도록 한 결과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기도 했다.

훗날 회상록에서 그는 “패전 책임자로서의 반성과 11년간의 시베리아 억류에서 살아남은 체험이 전후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목표를 실현하려면 ‘넘버 2’가 낫다는 것이 지론이었고 생전에 입버릇처럼 “깨끗하기만 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 보수 정치인의 브레인으로도 활약해 “전쟁을 주도한 인물이 정치에 관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한국의 군사정권과도 절친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 육사 1년 선배였던 그를 매우 존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방한 당시에는 밀사로서 사전 정지작업을 담당했다. 일본 언론은 역사가들이 그의 타계 소식에 “전쟁의 중추에 있던 사람으로서 밝혀야 할 일이 많았는데 핵심 부분을 말하지 않은 채 떠나 유감”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는 야마자키 도요코(山崎豊子)의 베스트셀러 소설 ‘불모지대’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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