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전통인형 제작자 현금원씨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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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원씨는 “서양인과 일본인 얼굴을 한 인형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우리 인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이훈구기자
현금원씨는 “서양인과 일본인 얼굴을 한 인형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우리 인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이훈구기자
“우리나라에는 사실 인형예술 전통이 없어요. 재미를 주는 물건을 완물(玩物)이라고 해서 경계하는 유교적 관념 때문이었죠. 여기에 도전해 새로운 한국적 전통을 세우고 싶습니다.”

인형제작자 현금원(玄錦媛·44)씨가 ‘새로운 전통’을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인형들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다. 백옥같이 뽀얀 얼굴, 초승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 둥근 어깨로 점잖게 가야금을 타고, 웃옷을 벗고 등목을 하기도 하고, 장죽을 물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이든 우리를 아득한 옛 자취로 데려간다.

“쟤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까지 종이로 만든 인형 옷이 상자 하나에 가득했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그의 인형가게 ‘흑운(黑雲)’에서 함께 만난 언니 규원씨(49)는 “금원이가 하도 인형을 좋아해 ‘인형으로 뭔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현씨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82년 프랑스 파리의 아르데코 국립미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전공은 조각이었지만, 파리 거리에서 그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중학교 이후 잊고 있던 인형이었다.

“인형 전문점에서 도자기로 만든 인형의 아름다운 얼굴에 완전히 매혹된 거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가게마다 일본 인형이 나란히 서 있었어요. 그 반면 한국에는 서양인 얼굴을 한 인형밖에 없다는 생각이 났지요. ‘이렇다 할 전통인형 하나 없는 나라여서야 되겠어’라는 오기 같은 게 생기더군요.”

그는 혜원의 그림첩 등을 연구해 전통 미인의 모습을 공부했다. 2002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전통인형 전시회 ‘흑운’을 열었고, 지난해 같은 이름의 가게를 열었다. ‘흑운’이란 조선시대 여인들의 풍성한 가체머리를 빗대 사대부들이 ‘검은 구름 같다’며 붙인 표현.

“작은 인형 하나에도 머리 모양, 옷 모양, 얼굴의 표현 등 선조들의 독특한 미의식을 표출할 수 있어요. 제 작업이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해서 앞으로는 많은 전통인형 장인들이 등장했으면 합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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