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외인부대…78학번은 기타치고 03학번은 보컬 맡고…

  • 입력 2004년 2월 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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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의 록밴드 동아리 ‘외인부대’는 유명 대학가요제 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8년 결성된 제1기가 ‘밀양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최고 성적. 요즘 ‘추억의 사운드’ 붐을 타고 다시 조명을 받는 샌드페블스(서울대), 블랙 테트라(홍익대), 활주로(항공대) 등에 비해 딜레탕트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인부대’는 다른 어떤 밴드보다 선후배간 결속력이 강하다. 1기인 78학번부터 26기인 03학번까지 한 달에 두 번꼴로 뭉쳐서 서울 시내 라이브바에서 콘서트를 연다. 블루스부터 록과 랩까지 좋아하는 장르에 따라 선후배가 뒤섞여 연주와 보컬을 맡는다.

키보드와 기타를 증권사 임원들이, 베이스기타는 고교 영어교사, 드럼은 중소기업 사장, 보컬은 03학번 학생이 맡는 식이다. 연주곡은 레드 제플린의 ‘로큰롤’ 같은 고전부터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등 신곡까지 다양하다. 넥타이부대와 대학생이 어우러진 이들의 즉석공연은 늘 손님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세대갈등이 부각되는 요즘 아버지와 딸 뻘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 격려하며 어울리는 무대의 감동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이 이뤄진 것은 2000년 재학생들이 홈페이지를 만들고 선배 100여명의 족보를 찾아 연락을 취하면서부터. 외국어대 출신이라 그런지 많은 멤버들이 미국 유럽 러시아 동남아 등 세계 곳곳에 나가 있었다. 그런 선배와 후배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대화를 이뤄냈다. 선배들은 가슴 속에 묻어 뒀던 ‘음악의 열정’을 되찾았고 취업난에 시달리던 후배들은 ‘성공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외인부대’는 1, 2년만 밴드활동을 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게 전통입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에 성공한 사람이 많죠.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을 즈음 후배들이 ‘뮤즈의 전령’처럼 찾아든 거죠.”(78학번 키보드 김태신·동원증권 차장)

“선배들이 우리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폭넓고 개방적이란 걸 발견했어요. 음악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인생 상담으로 이어지고요. 작년 취업대기자 3명이 모두 대기업에 합격한 데에도 대기업 인사팀장 등 선배들의 조언이 크게 한몫 했다니까요.”(01학번 보컬 고의진)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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