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시인 성기완 "음악도 글쓰기도 '밖에서 바라보듯' 합니다"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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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유리 이야기’를 내놓은 시인 겸 록 뮤지션 성기완. 그는 “음악은 의미를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묻어가는 작업이며, 시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김동주기자
시집 ‘유리 이야기’를 내놓은 시인 겸 록 뮤지션 성기완. 그는 “음악은 의미를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묻어가는 작업이며, 시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김동주기자
시인 성기완(36)은 두 번이나 약속을 연기한 끝에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나타났다.

둥근 얼굴, 짧은 머리에 깃 없는 티셔츠. 그가 기타리스트로 있는 인디 록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세 번째 앨범 녹음작업 때문에 늦어졌다고 했다. 시인, 록 뮤지션, 계간 ‘문학·판’ 편집위원, 대중음악평론가, 대학에서 불어와 대중문화를 강의하는 시간강사, 한때는 케이블 TV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

바쁜 그를 경기 김포시의 녹음실에서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까지 나오도록 한 것은 그의 두 번째 시집 ‘유리 이야기’(문학과지성사) 때문이었다.

록 뮤지션과 시인은 조화롭게 공존할까?

“글은 배웠으니까 하는 것이고 음악은 제가 원래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할 때도 시인다운 태도로 합니다.”

그가 말하는 ‘시인다운 태도’는 ‘결별의 태도’다. 그는 결별의 심정으로 세상에 섞여 있다고 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관계들을 ‘밖에서’ 바라보다 보면 시내를 걸어도 사막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료 음악가들을 만나면 사막 속에서 ‘내 무리’를 만난 것 같죠.”

록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잡음을 이용한 노이즈 록, ‘심심하다’고까지 평가되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꾸준히 팬들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방영됐던 MBC TV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 ‘경’이 참여한 밴드의 음악도 실제는 이들의 것.

‘자기는 아버지이자 연인이라고 했어 하긴 유리의 첫 남자는 틀림없이 그였어 비 오는 거리 위로 자막이 지나가 초록의 고무 괴물은 시인이야 나는 질투를 느껴.’(시 1)

시집 ‘유리 이야기’는 독립된 시 48편들이 일정한 줄거리를 형성해 외견상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주인공인 ‘나’와 ‘초록의 고무 괴물’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서로 상대방이 쓴 부분을 지워나가거나 부정한다. 둘 사이에는 ‘보라색 약’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연약한 여인 유리가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가 그렇듯, 시집 ‘유리 이야기’도 소음(노이즈)으로 가득하다. 뉴스에서 따 붙인 듯한 구절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줄곧 뒤집힌다.

“이건 앙심을 품고 만든 시집입니다.”

그는 일반인은 언어의 엔드유저(End User·일반사용자)라고 말했다. 컴퓨터의 일반사용자가 그렇듯, 보통 사람은 언어를 사용만 할 뿐 그것이 동작하는 원리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오늘날 언어의 하부구조를 보고 그 심층의 숨은 의미들을 건드려 제시하고 느끼게 하는 ‘고급사용자’로서 시인의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

그렇다면 그가 품은 ‘앙심’은 어떤 앙심인가?

“언어의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 퍼진 ‘확실한 텍스트’에 대한 앙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주장하거나 남에게 지시하는 용도로 ‘확실한’ 말을 쓰려 합니다. 제가 쓰는 말은 배열하는 순서에 따라 우연히 의미가 빚어지고 퍼져나가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말들을 나열한 결과 우연히 나타난 세계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제겐 중요합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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