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동화그림 「재야」작가 정승각씨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충주〓김화성기자]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 있는 그의 시골집을 찾았을때 그는 아이들과 새끼줄을 허리에 감고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악수할 때 내민 상처투성이의 두툼한 손. 어디에도 화가냄새는 나지 않았다. 농부라면 혹시 몰라도…. 어린이들의 그림친구 정승각씨(36). 서울 화랑가에서야 알든 모르든 웬만한 엄마와 아이들에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잘 알려져 있는 한국적 동화그림작가. 부산 대전 수원 등 전국 7개도시 엄마들이 나서서 「지방순회 주부초대전」을 열어준 아이들의 골목대장. 어느날 철거촌이나 빈민촌에 불쑥 나타나 아이들과 함께 동네 담에 벽화를 그리고 훌쩍 떠나 버리는 사람. 아이들은 그런 정씨를 그의 얼굴을 빗대서인지 「주전자 아저씨」라 부른다. 『아이들 그림이 갈수록 똑 같아져요. 이게 다 어른들의 잘못된 미술교육 때문이지요. 학습지의 색칠공부 같은 것은 정말 없어져야 합니다』 동화 그림작업은 보통 15일, 길어야 한달. 그러나 정씨의 그림작업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동화작가 권정생씨가 쓴 「강아지똥」(길벗)같은 경우는 무려 1년이나 걸려 완성했다. 실제 책에 실린 그림은 20여 장면. 강아지가 똥 누는 모습을 관찰하려 강아지 뒤를 졸졸 따라 다닌 게 4개월, 강아지 똥의 모형을 찰흙으로 뜬 뒤 밑그림 그리는데 2개월, 그러고도 몇달씩 바라보다 마침내 강아지똥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붓을 잡았다. 『동화책의 그림 하나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눈썰미가 빼어 납니다. 글 내용과 관계없는 환상적 그림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죽일 뿐입니다』 그가 그리는 아이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무잡잡하고 단단한 개구쟁이들. 선이나 색도 철저히 한국적이다. 정씨의 그림을 보고 기철학자 김용옥씨(전 고려대교수)는 『30년전에 이미 나왔어야 할 그림』이라며 무릎을 쳤다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그림책 전문출판사인 후쿠인칸쇼텐(福音館書店)에서도 여러차례 정씨 작품의 일본출판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관심을 표시해 왔다. 정씨는 10년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여름방학때마다 해 온 벽화 그릴 곳을 찾느라 요즘 적잖이 마음을 쓰고 있다. 그가 찾고 있는 곳은 죽어 있는 벽이나 담. 그곳에 티없이 맑은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생명을 불어 넣고 싶은 것. 정씨는 지난 14일 그동안 살아 오던 분당에서 가족을 데리고 충주로 이사했다. 비록 사글세이지만 헛간 작업실은 그와 5세, 7세 된 두 아들의 놀이터다. 벽엔 그의 그림과 두 아들의 그림이 뒤죽박죽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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