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있음’ 마스크 앱 보고 약국 달려가니 “다 팔렸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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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앱서비스 첫날 헛걸음 일쑤
“마스크 수량 실시간 제공” 홍보, 약사들 “판매몰려 입력 여력 없어”
실제 30곳중 7곳서만 구매 가능
전산시스템 오류 겹쳐 혼란 가중

앱 따로 약국 따로 정부의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사흘째인 1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약국은 마스크 재고가 있다는 ‘마스크 앱’ 정보와 달리 ‘마스크 오늘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앱 따로 약국 따로 정부의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사흘째인 1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약국은 마스크 재고가 있다는 ‘마스크 앱’ 정보와 달리 ‘마스크 오늘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마스크 앱’만 믿고 약국을 찾았는데 세 군데 모두 허탕입니다.”

11일 정오경 서울 용산구에 있는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주변 A약국. 인근 직장을 다니는 이휘원 씨(32·여)는 약국 앞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마스크 재고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는 ‘마스크 앱’은 A약국에 재고가 있다고 나와 있었지만 막상 가 보니 “이미 다 팔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지 사흘째지만 마스크로 인한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정부가 소개한 ‘마스크 앱’이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시민들은 헛걸음을 하기 일쑤였다.

현재 스마트폰에 깔 수 있는 ‘마스크 앱’은 10개 정도. 약국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당국에 판매 현황을 입력하면 이 앱들을 통해 마스크 수량을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앱에 ‘재고 있음’이라고 뜨더라도 막상 가 보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씨가 방문한 A약국 역시 재고 수량이 ‘보통’(30∼99개)으로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이미 다 팔린 상태였다.

11일 동아일보가 서울 용산구와 강서구, 관악구 등에서 ‘재고 있음’으로 뜬 약국 30곳을 확인한 결과 실제로 바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약국은 7군데(23%)뿐이었다. 7곳조차도 앱에 표시된 마스크 수량과는 50∼100개 이상 차이가 났다.

기껏 만든 앱이 이렇게 소용이 없는 이유는 뭘까. 현장에서 만난 약사들은 “실시간으로 전산 시스템에 판매 현황을 입력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A약국의 약사인 B 씨도 “우리 같은 1인 약국은 판매 정보를 전산 시스템에 하나하나 입력했다간 고객에게 마스크를 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마스크 판매 시간이나 방법이 약국 재량에 따라 다른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약사 C 씨는 “정해진 판매 시간이 아닌데 앱에는 재고가 ‘100개 이상’으로 표시돼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몰렸다”며 “약국마다 판매 시간 등 실제 여건이 다른데 앱에는 전혀 반영이 안 돼 있다“고 했다. 또 ‘소형 마스크’만 재고가 남았을 때에도 막상 앱에는 종류에 구분 없이 수량이 표시되는 것도 문제란 지적이 나왔다.

우체국서도 ‘마스크 5부제’ 대구경북
 지역에서 우체국이 ‘마스크 5부제’를 처음 시행한 11일 대구 신매동우체국 앞에 오전 일찍부터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우정사업본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중복구매 확인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들이 약국과 중복해서 1인 2장 이상 마스크를 살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구=뉴스1
우체국서도 ‘마스크 5부제’ 대구경북 지역에서 우체국이 ‘마스크 5부제’를 처음 시행한 11일 대구 신매동우체국 앞에 오전 일찍부터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우정사업본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중복구매 확인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들이 약국과 중복해서 1인 2장 이상 마스크를 살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구=뉴스1
이로 인해 약국과 고객 사이에선 마찰이 생기는 모습도 보였다. 용산구의 한 약국은 “앱의 정보만 보고서는 ‘재고가 있는데 왜 팔지 않느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몇몇 약사들은 일부러 입고된 물량을 전산 시스템에 실시간 입력을 하지 않아 재고로 잡히지 않게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이날 오전 마스크 판매 현황의 전산 시스템까지 먹통이 돼 혼란은 더욱 커졌다. 한 약사는 “아침부터 시스템이 오류가 나는 바람에 100명 넘게 직접 종이에다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가며 마스크를 팔았다”며 “정부가 시스템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게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몇몇 ‘마스크 앱’은 이용자가 폭주하며 접속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현장 약사들은 마스크를 사러 오는 고객들에게 “마스크 앱을 믿지 말라”고 조언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민 D 씨는 “약국에 갔더니 약사가 ‘앱은 보지 말고 직접 전화해 확인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강서구약사회 임성호 회장은 “정부가 현장을 돌아봤으면 실시간 재고 현황을 입력할 여력이 안 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며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은 소외될 수 있다는 점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박종민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마스크 5부제#앱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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