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험 깬 기초생활 장애인 기부’에 화답… “밑반찬 보내요” “그 돈 채워 드릴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대구 주민, 본보 보도 뒤 직접 통화… “천사의 마음에 눈물 나고 힘도 나”
서울 주민도 감동의 라면 한 박스… 강 씨 “좋은 뜻으로 냈는데 왜들…”

코로나 휴업 가게에 응원 쪽지 서울 송파구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출입문에 붙은 ‘임시 휴업 안내문’ 옆에 시민들이 “완쾌를 기원한다” “힘내라” 등 응원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붙여놓았다. 이 가게 주인은 지난달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영업을 중단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코로나 휴업 가게에 응원 쪽지 서울 송파구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출입문에 붙은 ‘임시 휴업 안내문’ 옆에 시민들이 “완쾌를 기원한다” “힘내라” 등 응원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붙여놓았다. 이 가게 주인은 지난달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영업을 중단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강 선생님은 투명한 날개를 다신 천사입니다.”

살짝 낯간지러울 수도 있으련만. 3일 오후 대구 북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민정 씨(64)는 스스럼없이 상대를 ‘천사’라고 불렀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강순동 씨(62)와 전화 통화가 연결되자 김 씨는 감격에 겨운 듯 목이 메었다.

실은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이날 아침 평소처럼 집에서 동아일보를 집어든 김 씨는 1면 기사를 보다가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기초생활 급여로 생계를 잇는 5급 지체장애인인 강 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하고 있는 대구 시민을 위해서 어렵사리 성금을 내놓은 사연이었다. 장장 7년 동안 아껴서 모은 암 보험을 중도 해지한 118만7360원이다.

한참 동안 고마움을 달랠 길 없던 김 씨는 어느샌가 강 씨에게 딱한 마음이 들었다. 본인이 쓸 돈도 넉넉지 않은 형편일 것 같아 끼니는 잘 챙기는지도 걱정됐다. 뭐라도 할 게 없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무작정 동아일보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아니 어쩌면 더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분이잖아요. 그런데 보험까지 깨가며 돈을 보내셨다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별거 아니더라도 김치나 밑반찬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김 씨의 따스한 마음은 그대로 강 씨에게 전해졌다. 김 씨가 그를 ‘투명한 날개를 단 천사’라고 부르며 고마워하자 강 씨는 흐느끼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김 씨는 “그냥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도 눈물이 나고 힘도 났다”며 “서로 ‘함께 코로나19를 꼭 이겨내자’는 말만 여러 번 반복했다”고 했다.

“만난 적도 없고 생김새도 모르지만 남 같지가 않았어요. 이제 전화번호도 알았으니 자주 연락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참 잘했다 싶어요. 너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다 함께 살아야지요.”

김 씨는 이날 오후 내내 여러 밑반찬을 만들었다고 한다. 4일 택배로 강 씨에게 보낼 계획이다. 얼마나 맛있을지는 두 사람만 알 일이다.

하나의 선행은 다른 화답으로도 퍼져나갔다. 이날 오전 대구에 사는 조모 씨(56)도 동아일보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강 씨가 돈을 전한 길음2동 주민센터로 전화해 “마음이 너무 고맙다. 많이 울었다”고 했다. 조 씨는 “강 씨 사정도 어려워 보여 보탬이 되고 싶다”며 118만7360원을 주민센터로 보내왔다. 강 씨가 냈던 성금과 10원 단위까지 똑같은 금액이었다.

연락을 받은 강 씨는 또 한번 뭉클한 모습을 선사했다. 강 씨는 “좋은 뜻으로 낸 건데 왜 자꾸 이러느냐. 고맙지만 돈은 안 받겠다. 성금으로 쓰든지 마음대로 해라”라고 한사코 거부했다. 하지만 조 씨가 강 씨 명의로 지정기탁을 신청해 주민센터가 맘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한지용 주무관은 “설득 끝에 강 씨가 주민센터에 와서 받아갔다. 그때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날 주민센터는 전화가 잦았다. 서울에 산다며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도 “성금 낸 강 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기사를 아침에 읽었다. 라면 한 박스를 보낼 테니 꼭 전해 달라”고 했다. 한 주무관이 “전달한 다음에 결과를 알려드리겠다”며 연락처를 요청했지만, 여성은 그저 “잘 부탁한다”며 끊었다.

박종민 blick@donga.com·구특교 기자
#코로나19#대구 주민#동아일보#암 보험#성금#대구 시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