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생계 위기 내몰린 일용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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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코로나 타격’ 현실화
대면공포 확산에 행사 모두 취소… 프리랜서 “한번도 못겪어본 불황”
공사 줄며 새벽 인력시장 구직난… 일거리 생겨도 값싼 중국인 차지

지난달 27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거리를 구하려고 줄을 서 있다. 
이들 중 일감을 얻는 이는 70%가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확산이 본격화한 뒤 일거리가 줄어들며 일용직 근로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지난달 27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거리를 구하려고 줄을 서 있다. 이들 중 일감을 얻는 이는 70%가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확산이 본격화한 뒤 일거리가 줄어들며 일용직 근로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오늘도 공쳤구먼, 공쳤어.”

지난달 27일 오전 5시 50분 수도권 최대 규모의 인력시장인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면마스크를 한 일용직 근로자 박모 씨(56)가 땅바닥을 보며 힘없이 말했다. 다른 이들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 일감이 없어 하루를 끝내야 하는 박 씨의 한숨이 마스크 너머로 새어나왔다. 그는 “전염병이 무섭다 해도 어떻게든 하루 벌어야 먹고사니 일자리를 찾으러 나왔는데 요즘 진짜 일이 없다”며 “마스크 사기도 부담스러워 계속 빨아 쓴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거리를 서성이는 사이 흰 방역복을 입은 구청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소독약을 뿌리며 지나갔다.

평상시 같으면 남구로역의 새벽은 수도권 각지의 공사장으로 출발하는 승합차 수십 대와 한국인, 중국인, 중국동포 근로자 등 1000여 명이 엉켜 분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는 이곳을 찾는 인원이 600∼700명 수준으로 한산해졌다. 아파트 분양이 늦어지고 경기 둔화로 각종 건축 공사가 지연되면서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건자재 공급업체 관계자는 “3월부터는 주문이 본격적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물량이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라며 “협력사가 이미 30% 정도 일을 접은 상태”라고 했다.

지난해만 해도 한 달에 최소 15일 정도 일을 구할 수 있었다는 김모 씨(52)도 이날 허탕을 쳤다. 김 씨는 “중국인 근로자의 일당은 7만 원이고 한국인은 13만 원이라 그나마 없는 일자리도 다 중국인 차지”라며 “갑자기 결원이 생겨도 병이 옮을까 봐 중국인들이 한국인들과 같은 차를 안 타려 해서 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프리랜서와 일용직 근로자들의 생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대면(對面) 공포가 확산되면서 하루하루 수입으로 살던 이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상황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는 김모 씨(34)의 지난달 수입은 겨우 100만 원을 넘겼다. 패션쇼와 웨딩업계에서 나름대로 경험이 많은 전문가이지만 코로나19로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자 당장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혼과 패션 행사가 몰려 있는 2∼5월은 김 씨에겐 성수기라 예년에는 한 달에 20건씩 일을 했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일거리가 끊기며 4건을 겨우 채웠다. 그마저도 단가가 저렴한 짧은 출장이라 수입은 넉넉지 않았다. 김 씨는 “메이크업은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얼굴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코로나19 이후엔 수요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라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불황이라 겁이 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프리랜서 카메라감독으로 일하는 김모 씨(36)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국이나 외주 제작사의 촬영을 돕고 하루 30만 원을 받는 김 씨는 지난달에 딱 8일을 일했다. 야외 촬영 수요가 감소하면서 김 씨의 일도 줄어든 것이다. 김 씨는 “7세, 5세 아이를 외벌이로 키우는 상황이라 막막하다”며 “지난달에는 그나마 미리 예정된 일이라도 있었지만 이달엔 그마저도 없어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밖에 나오길 꺼리면서 온라인 쇼핑과 배달 수요는 늘었다. 자연히 배달기사들의 일자리도 증가했다. 건당 700원이던 수수료도 1500원 정도로 뛰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업무 고충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배달대행 업계 관계자는 “감염이 무섭긴 하지만 업무 단가가 오르다 보니 눈 딱 감고 ‘생명수당’을 더 받는 셈 치며 일하고 있다”며 “우린 자영업자도 회사원도 아니다 보니 정부 지원도 없고 각자 버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일용직#프리랜서#구직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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