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의 무례와 오만, 한국 정부의 굴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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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로나19(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급증하자 중국 지방정부에서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강제 격리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25, 26일 산둥성 웨이하이, 장쑤성 난징시는 한국발 항공승객을 격리했다. 일부 중국 교민들의 집 문과 벽에는 붉은색 ‘봉인’ 딱지까지 붙었다. 14일이 지나야 문을 열어주겠다는 강제 봉쇄 조치였다.

중국 측의 이런 행태에 비판이 제기되자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정부는 한국 국민에 대해 제한 조치를 안 했다”며 “일부 지방정부의 조치는 한국 국민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억지스러운 변명에 불과하다. 지방자치가 허용되지 않는 공산당 일당체제에서 중앙정부의 묵인이나 양해 없이 입국 제한 같은 주권사항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에서 중국인 입국 통제가 이어졌지만 우리 정부는 전면적인 입국 제한을 하지 않았고 민관이 함께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중국은 한국인 입국 통제에 나섰다. 한국 정부는 방역 외에도 한중 외교·경제 관계 등을 깊이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는 데 반해 중국의 태도는 다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그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국경 간 이동 억제가 전염병 확산 방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이 중국 지방정부의 과도한 조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사실상 일축한 것이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도 “외교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방역 문제”라고 거들었다. 자국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오만한 중화 패권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 중앙정부가 한 게 아니다”라고 했고, 강 장관도 “각국이 자체 평가에 따른 조치에 대해 우리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국민이 중국에서 당하는 ‘왕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하는 한심한 태도다.

중국과의 밀접한 무역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국민 생명이 걸린 방역 문제는 양보해서는 안 되는 최우선 과제다. 중국의 무례와 오만한 행태에 대해 원칙과 국익의 관점에서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 대응이 미온적일수록 중국 눈치 보기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은 커져만 갈 것이다.
#코로나19#한국인 입국 통제#중화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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