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산가족 상봉 좌절이 “남북 정부 모두 잘못”이라는 對北 저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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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추석날인 13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준다는 것은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 무산의 책임을 남북 정부 모두에 돌린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지 않은 것이다.

사흘 뒤면 남북 정상이 3차 정상회담을 하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을 담은 9·19 평양 공동선언을 체결한 지 1주년이 된다. 당시 남북이 합의한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복구, 이산가족 간 서신 왕래, 화상상봉 등은 북측이 실무회담조차 거부하고 있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동·서해선 철도 연결 사업도 착공식만 이뤄진 채 후속공사 없이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북측은 2·28 하노이 핵 회담 결렬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보고 남북대화에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마저 정치적 문제의 볼모로 삼아 실무 대화조차 거부하는 북의 태도는 약속 위반이며 최소한의 인도주의마저 외면한 처사다.

역대 한국 정부는 보수 진보 구분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 추진해 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1년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찾기 운동이 시작됐고, 1985년엔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행사도 성사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엔 이산가족 상봉이 더욱 활성화됐다. 하지만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이 부각될 가능성을 우려했는지 항상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이산가족 상봉이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정권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측이 책임 소재를 흐리며 대북 저자세로 임하면 북측으로 하여금 이산가족 상봉을 다른 경제협력 이슈 등과 연관시켜 대가를 요구하게 만들고 결국 상봉을 더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현재 우리 측 이산가족 생존자 수는 5만여 명이며 90세 이상 초고령층이 23%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의 좌절이 남북 정부 모두의 잘못이라는 식의 부적절한 논리로 눈치 보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북한에 실무협의를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북측은 이산가족들의 절절한 아픔을 외면하며 정치적 득실만 따지는 비인도적 태도가 역사와 민족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산가족#북한#이산가족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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