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다수의견 “박근혜 前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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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 대법 선고]박근혜-최순실-이재용 원심 파기환송
“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은 뇌물”… 경영권 승계 위한 부정청탁 인정
“청탁 없었다”던 李 2심과 반대결론… “승계-청탁 관계없다” 반대의견도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대법정에서 방청객들이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당초 방청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해 추첨을 위한 신청을 받았지만 미달됐다. 이날 방청객은 200여 명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대법정에서 방청객들이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당초 방청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해 추첨을 위한 신청을 받았지만 미달됐다. 이날 방청객은 200여 명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 13명은 29일 오후 2시 국정농단 선고 직전에야 판결문에 서명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67·수감 중)과 최순실 씨(63·수감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1)에 대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을 심리하느라 6개월간 고군분투를 벌였다. 올 2월부터 6월까지 전원합의체 심리를 6번 연 끝에 사실상 심리를 종결했고, 판결문을 다듬는 추가 논의를 하느라 판결이 다시 2개월 늦어졌다. 이를 통해 그동안 엇갈렸던 하급심 판단에 대한 일종의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 “최순실 측에 건넨 말 3마리는 뇌물”

10명의 다수의견은 최 씨 측이 삼성에서 받은 살시도와 비타나, 라우싱 등 34억 원 상당의 말 3마리 소유권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말 소유권이 최 씨에게 있다”며 뇌물로 봤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항소심은 “말 소유권은 이전되지 않았다”면서 최 씨의 말 사용에 대한 경제적 이득이 뇌물이라는 정반대의 판단을 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최 씨가 2015년 11월 이후로 삼성에 말들을 반환하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 씨가 말들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말들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손해를 물어줘야 할 필요가 없었던 만큼 실질적인 소유권이 넘어간 게 맞다고 본 것이다. 최 씨와 삼성이 말 3마리의 실질적인 사용 및 처분 권한이 최 씨에게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봤다. 삼성이 말 3마리의 소유권을 넘긴 이유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2차례 단독 면담에서 “좋은 말을 사줘라”고 요구했고, 그 뒤 삼성이 최 씨에게 말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 “경영권 승계 위한 부정 청탁 인정”

다수의견은 또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여 원 지원금을 뇌물로 판단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최 씨에게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정부의 수반으로서 기업체들의 활동에 직간접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만큼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 해결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줄 동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부정한 청탁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이지 않아도 묵시적으로 가능하고,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는 정반대의 결론이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뇌물로 인정된 승마지원 용역대금 36억 원 외에 말 구입액(34억 원)과 영재센터 지원금(16억 원) 등 50억 원이 추가로 뇌물로 인정됐다. 뇌물이 회삿돈으로 지급돼 이 부회장의 횡령액수가 뇌물과 똑같이 늘어났다.

○ 대법관 3명은 반대의견

조희대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 등 3명은 다수의견과 전혀 다른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반대의견은 먼저 말 3마리의 소유권이나 실질적 처분권이 최 씨에게 넘어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대의견은 삼성이 차량 2대를 코어스포츠에 팔고 돈을 송금 받았다는 정황에 주목했다. 말 값에 비하면 차량의 금액은 소액에 불과한데 차량 대금은 받고 말 값은 받지 않았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씨가 말의 패스포트(말 소유자를 표기한 명찰)의 마주란에 삼성을 기재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있을 뿐 소유권을 요구하는 내용은 없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반대의견은 “(이 부회장이) 최 씨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말들의 소유권이나 실질적인 처분 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반대의견은 또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과 부정한 청탁의 대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력을 확보했더라도 그 이유가 영재센터 지원이 아닌 구조조정 등 삼성의 여러 노력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고 봤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국정농단#대법 선고#원심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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