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이주여성 ‘억울한 추방’ 막는다… 대법, 체류자격 범위 확대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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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 100% 책임때만 연장’ 기존 원심 판결 뒤집고 돌려보내
“부당한 대우 받으며 이혼하면서도 추방위기 몰린 이주여성 보호해야”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여성이 이혼한 경우 체류자격을 엄격하게 적용해 사실상 국내에서 내쫓는 관행이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혼이 사실상 추방을 뜻하는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은 그동안 폭력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쉽사리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최근 전남 영암군에서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동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의 진일보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10일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 N 씨는 2015년 7월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17세 연상의 한국 남성 정모 씨와 결혼하고, 그해 12월 입국했다. ‘코리안드림’의 기대가 산산이 깨지는 데는 불과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요구로 임신 중에도 가족의 가게에서 일하다 이듬해 2월 유산까지 했다. 고부갈등으로 내쫓기다시피 집을 나온 N 씨는 2016년 7월 이혼소송을 했고, 이듬해 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혼 후 N 씨는 ‘결혼이민 체류자격’ 연장을 신청했으나 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이를 불허했다. 이혼의 책임이 남편에게 더 많다는 사실만으론 부족하고, 남편에게 100% 귀책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N 씨는 부당하다며 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 2심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에서 좁게 해석한 체류자격 인정범위를 넓게 해석했다. 혼인 파탄이 어느 한쪽의 100% 잘못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드물다는 것을 고려했다.

대법원은 “결혼이민 체류자격의 입법 취지는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외국인에 대해 인도적 측면에서 체류를 허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결혼이주여성의 연장 신청을 거절하려면 이혼의 주된 책임이 이주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행정당국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의 제도와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폭행을 당해 확실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채 가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감안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최근 발생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폭행사건을 언급하며 결혼이주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대법원은 “(이주여성이)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면 여권을 빼앗거나 체류기간 연장에 동의해주지 않겠다거나 쫓아버리겠다고 협박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10일 재한베트남공동체 회장과 주한 베트남대사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간담회를 열고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청취했다.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한 현지 여론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결혼이민자의 비자와 체류 등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거쳐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황성호 / 영암=이형주 기자
#이주여성#체류자격#남편 귀책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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