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주 한잔, 군만두 한입… 베트남 입맛 사로잡은 K푸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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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푸드 수출시장 떠오른 베트남

지난달 18일 저녁 베트남 호찌민의 ‘고기 하우스(Gogi House)’. 베트남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에서 한국식 불판과 연기를 배출하는 환기구가 눈에 띈다. 베트남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 한식집은 베트남 전국에 60개가 퍼져 있다. 호찌민=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지난달 18일 저녁 베트남 호찌민의 ‘고기 하우스(Gogi House)’. 베트남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에서 한국식 불판과 연기를 배출하는 환기구가 눈에 띈다. 베트남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 한식집은 베트남 전국에 60개가 퍼져 있다. 호찌민=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원래는 만두를 쪄서 먹었죠. 그런데 1년 전에 한국 음식을 접하고 나선 구워 먹어요.”

지난달 18일 오후 6시경 방문한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가정집. 3층 건물인 이 집 주방에서 레민응옛 씨(42)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를 굽고 있었다. 베트남은 중국 식문화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만두를 쪄서 먹었다.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찐만두가 아닌 군만두를 먹는 베트남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날 레 씨의 남편, 아들과 친척들까지 총 5명의 식사에선 한국식 불고기와 김치도 밥상에 올랐다. 컨설팅회사 임원인 남편 레콩탄 씨(47)는 반주로 한국 소주를 곁들였다. 레 씨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회사 회식에서도 한국 식당을 즐겨 찾는다”면서 “한국 음식과 한국 제품은 맛도 좋지만 위생적으로도 안심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식품 안전’ 내세워 베트남 공략

호찌민 뚜레쥬르의 오토바이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 CJ푸드빌 제공
호찌민 뚜레쥬르의 오토바이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 CJ푸드빌 제공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농림수산식품 수출액은 93억1000만 달러(약 10조 원)로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보따리상들이 소규모로 수출하던 산업이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K푸드 수출국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시장이 베트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베트남 식품 시장은 꾸준히 연 6%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7.08%의 성장률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도 6%대 중반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높은 성장률로 각광받는 베트남에서는 최근 식품 위생 문제가 주요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베트남 보건부 식품안전국에 따르면 2015∼2016년 베트남에서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자는 한 해 20명이 넘었다. 지난해 상반기(1∼6월) 베트남 정부가 35만1130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식품안전 조사를 했는데 적발된 기업이 19.5%(6만8362곳)에 이르렀다. 베트남에서 유통되는 식음료품의 95%가 가판대 등 전통적 유통채널에서 판매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식품 기업들은 식품 안전을 내세우며 베트남 식탁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올해 베트남에서 비비고 만두로만 400억 원의 매출을 전망하는 CJ제일제당은 얼마 전 현지 전통 절임류 음식인 ‘드어까이’를 출시했다. 배추를 절여서 만드는 드어까이는 베트남에서 즐겨 먹는 반찬이다. CJ제일제당은 엄격한 품질관리를 내세우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시장조사 결과 드어까이의 80%가 전통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어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 손쉽게 구하고, 입맛에 맞는 K푸드

호찌민의 한 마트에 진열돼 있는 각종 김치 상품들. 호찌민=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호찌민의 한 마트에 진열돼 있는 각종 김치 상품들. 호찌민=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지난해 K푸드 베트남 수출액은 5억9000만 달러(약 6954억 원)로 2017년 대비 21.6% 성장했다. 지난달 18일 찾은 베트남 호찌민의 일본계 대형마트인 이온몰에선 만두와 라면 등 K푸드를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시식 행사가 진행 중인 김치는 판매대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낌히엔 씨(25·여)는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며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한식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K푸드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CJ제일제당은 베트남인들이 좋아하는 야채인 고수를 넣은 고수김치를 팔고 있다. 1995년 베트남에 진출한 오리온은 2017년 단맛을 좋아하는 베트남 소비자의 성향에 맞춰 빵 속에 카카오를 많이 넣은 ‘초코파이 다크’를 선보였다. 롯데리아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현지 식문화를 반영한 라이스 메뉴를 개발했다.

K푸드가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 기업이 한국 기업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있다. 호찌민 도심에 있는 CJ푸드빌의 뚜레쥬르 1호점은 2007년 문을 열 당시 한국의 발레파킹 모델에서 착안해 무료 오토바이 발레파킹을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프리미엄 베이커리 체인으로 인정받는 뚜레쥬르에서 선보인 무료 발레파킹은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나상천 CJ푸드빌 베트남 법인장은 “뚜레쥬르의 무료 발레파킹 전략 이후에 이 일대 카페는 모두 무료 발레파킹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역의 뚜레쥬르 매장은 34곳으로 내년까지 최대 50여 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베트남은 국토의 상당 부분이 바다와 접하고 있어 인근 아세안 국가로 물류를 운송할 때 장점이 크다. 높은 성장률 외에 이런 지리적 여건을 보고 테스트베드 형태로 베트남에 진출한 뒤 다른 동남아 국가로 확대하는 기업들이 많다. 베트남에는 CJ와 오리온 등이 세운 현지 공장이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엔 KOTRA가 동남아 본부를 싱가포르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호찌민=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한국소주#베트남#k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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