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후배가 거짓진술-조작-모함”… 후배 법관 앞에서 항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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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 영장심사]5시간30분간 검찰과 법리 공방

양승태-박병대, 같은날 영장심사 출석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가운데)이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재판 개입 등의 혐의로 영장이 재청구된 박병대 전 대법관도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받았다. 최혁중 
sajinman@donga.com·김동주 기자
양승태-박병대, 같은날 영장심사 출석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가운데)이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재판 개입 등의 혐의로 영장이 재청구된 박병대 전 대법관도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받았다. 최혁중 sajinman@donga.com·김동주 기자
“대법원장은 그렇게 보고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법원에 대한 모욕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은 23일 구속영장 실질심사 막바지에 법정의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사법연수원 25년 후배인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52·27기)에게 구속이 부당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장심사에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은 심사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명 부장판사의 결정을 기다렸다.

○ 양승태, ‘모욕’ ‘수치’ ‘수모’ 강조

이날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시작된 영장심사는 오후 4시까지 5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웠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사실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지연 개입 등 40여 가지에 달하고, 주도적으로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 만큼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에 대한 모욕’ ‘수치’ ‘수모’ 등을 강조하며, 영장 범죄 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은 후배 판사가 거짓 진술을 했고, 모함을 받았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의 발언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 검찰이 ‘스모킹건’(결정적 증거) 중 하나로 생각하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57·18기)의 업무수첩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은 수첩에 적힌 한자 ‘大’가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발언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大’를 나중에 수첩에 써넣었을 수 있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강제징용 소송 지연 개입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변호사를 만난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소송과 관련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며 김앤장 측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에서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의 이름 옆에 직접 ‘V’ 표시를 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기계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날 법원은 후배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영장심사에서 안 전 검사장 선고를 거론하며 수십 명의 법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가 검사 1명에 대한 인사 보복 혐의보다 훨씬 무겁다는 논리를 폈다.

○ 박병대, 점심 거른 채 영장심사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법 319호 법정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한 박병대 전 대법관(62·12기)에 대한 영장심사가 열렸다.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박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약 7시간 동안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 영장심사보다 1시간 반 더 걸렸다. 박 전 대법관은 점심을 먹지 않고, 중간에 단 10분 동안 휴식했다.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27기)가 검사에게 상당히 많은 질문을 해 심사가 길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법관은 영장심사 최후진술에서 “한 달여 만에 다시 이 법정에 섰다. 쌓인 업보가 얼마나 많기에 이런 화를 거듭 당하는가 하는 회한과 두려움으로 며칠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마저 지배한 칼춤의 시대’로 기억되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재판 거래’와 ‘사법농단’은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구속 여부 놓고 장외 찬반집회


이날 법원 밖에선 오전부터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찬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앞 법원 삼거리 오른편엔 ‘양승태 구속’, 왼편엔 ‘사법부는 좌파정권 눈치 그만 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경찰이 양쪽의 접촉을 차단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 직원 3253명의 서명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김예지 기자
#양승태#사법행정권 남용#대법원장#영장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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