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8개월뒤 中 상하이서 ‘대한승려 독립선언서’ 발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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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1970년 佛보관 원본 첫 보도
“日 통치 배척 대한독립 선언하노라”, 승려 12명중 2명은 범어사 출신

대한승려연합회 승려독립선언서의 우리말 원본 발견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기사 중 ‘혈전 결의’라는 제목도 보인다. 동아일보DB
대한승려연합회 승려독립선언서의 우리말 원본 발견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기사 중 ‘혈전 결의’라는 제목도 보인다. 동아일보DB
“한토(韓土)의 수천 승려는 이천만 동포 급(及) 세계에 대하야 절대로 한토에 재(在)한 일본의 통치를 배척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장함을 자(玆)에 선언하노라.”

1919년 11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한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승려연합회’ 명의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일부다. 선언서 대표자로 스님 12명의 법명(또는 속명)이 끝부분에 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른바 ‘승려독립선언서’다. 발표 일자는 ‘대한민국 원년 11월 15일’로 돼 있다. 이 선언서는 200자 원고지 9장 분량으로 국한문 혼용, 영문, 한문의 3가지로 정리돼 있다. 특히 이 선언서에 서명한 12인에는 두 명의 범어사 출신 스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발표 시점은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뒤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선언서는 “대한의 국민으로서 대한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야 이천년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대한불교를 일본화와 멸절에서 구하기 위하야 아(我) 칠천의 대한승니(大韓僧尼)는 결속하고 기(起)하였노니…”라며 불교계의 결연한 항일 의지를 보여준다.

선언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다른 탄원서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법과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는데, 1969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이 자료의 존재를 확인했다. 동아일보는 1970년 2월 28일자에 ‘3·1운동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우리말 원본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선언서의 존재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렸다.

선언서의 12인은 오만광(吳卍光) 이법인(李法印) 김취산(金鷲山) 강풍담(姜楓潭) 최경파(崔鯨波) 박법림(朴法林) 안호산(安湖山) 오동일(吳東一) 지경산(池擎山) 정운몽(鄭雲夢) 배상우(裵相祐) 김동호(金東昊).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탄압을 우려해 가명을 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는 1970년 3월 8일자를 통해 “지금 살아계신 스님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만광(오성월·범어사 주지), 이법인(이회광·해인사 주지), 김취산(김구하·통도사 주지), 지경산(김경산·범어사 고승) 스님”이라고 보도했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중국 상하이#‘대한승려 독립선언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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