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제 겨우 한살… 남성중심 왜곡된 性 변화의 첫발 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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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언론 ‘와인스틴 이후 1년’ 평가
공소시효 만료-증거 불충분 많아… 와인스틴 피해 80명중 인정 3명뿐
코스비도 1건만 기소돼 유죄 판결, “남성 성폭력 진지하게 보기 시작”
공소시효 연장 등 개선시도 이뤄져… 일각선 ‘SNS 유죄 판결’ 우려도

“사회적 행동 패턴이 변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미투 운동은 아직 한 살일 뿐이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을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5일 뉴욕타임스(NYT)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여배우와 여직원에게 수십 년간 성폭력을 가해 왔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미투 운동의 포문을 연 지 약 1년. 그동안 성폭력의 심각성에 둔감했던 정치인 등의 유명 인사들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미국 사회에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와인스틴을 법정에 세운 여성들의 목소리

와인스틴은 가해자로 지목된 수많은 유명 인사 중 검찰이 기소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5월 미국 맨해튼 검찰로부터 1급 강간 및 성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폭로가 시작된 지 약 7개월 만인 5월 25일 그는 뉴욕 경찰에 체포됐다가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으며 5일 뒤 기소됐다. 7월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 혐의가 추가됐다. 6월 뉴욕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한 그는 “동의 없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다음 재판은 11월 8일에 열린다.

‘진보 페미니스트’를 자처해온 와인스틴의 추악함을 드러낸 건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다. 그의 성추행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영화배우 애슐리 저드를 비롯해 귀네스 팰트로, 앤젤리나 졸리, 우마 서먼 등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과 와인스틴 소유 회사의 여직원 등 80명 이상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와인스틴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해고됐다. 1월엔 부인 조지나 채프먼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했다. 영국 런던 경찰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도 그를 조사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이 남성에 맞서는 말을 하면, 오히려 여성이 의심을 받아 왔다”며 “미투 운동으로 남성에 의한 성폭력 문제, 여성의 피해 증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가 제기한 브렛 캐버노 미 연방대법관의 성폭행 의혹은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로 이어졌다. 1991년 토머스 클래런스 연방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그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가 ‘정신이 이상하고 난잡한 여자’라는 비난을 받은 애니타 힐 브랜다이스대 법대 교수의 사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 공소시효-당파 싸움 미투 앞에 놓인 과제들
미투 증언이 실제 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소시효 만료, 증거 불충분 등의 법리적 문제 때문이다. 80여 명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와인스틴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건 3명의 피해 여성뿐이다. 미투 운동 이후 성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배우 빌 코스비의 경우에도 50명 이상의 여성이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검찰은 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서만 기소를 했다. 7일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LA 검찰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22명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인사에 대한 기소를 준비했다. 하지만 고발자가 많은 와인스틴, 배우 케빈 스페이시 등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종결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미국 주(州)들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은 지난달 아동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시간주는 올 6월 아동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는 기간을 19세 생일 전에서 28세 생일 전까지로 늘렸다.

미투 운동이 당파 논리에 휘말리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음 달 6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는 캐버노 연방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성폭행 의혹으로 당파 싸움이 절정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캐버노 대법관 인준 과정이) 민주당이 꾸며낸 거짓말에 휘말렸다”고 비난하며 싸움에 불을 붙였다. 올해 초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 여성의 66%가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이 처벌을 면하는 게 문제라고 답한 반면에 같은 대답을 한 공화당 지지 여성은 39%에 그쳤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사회적 유죄’가 확정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미국 유명 문예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이안 부루마 편집장은 캐나다의 전직 방송인이 성추문으로 추락하게 된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를 잡지에 실었다가 논란이 일면서 결국 해고됐다. 이후 부루마는 네덜란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에서 유죄로 지목됐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미투 가해자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싶었다”며 “그러다 내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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