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옷’ 차려입은 우리 노랫말… 외국서도 “얼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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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572돌 한글날]케이팝 열풍 타고 대접받는 한글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할 수가 있었어∼’(‘FAKE LOVE’ 중)

또박또박 발음되는 ‘한국어’였다. 6일 저녁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에서 4만 명의 관객이 일제히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할 때 쓰인 말. 객석 곳곳에는 한글로 쓰인 응원 문구가 눈에 띄었다.

케이팝 열풍과 함께 전 세계에 ‘한국어가 멋지다, 세련됐다’는 인식과 ‘한국어를 배우자’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가요계에도 한국어 제목과 가사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한때 아이돌 댄스가요에서 영어가 혼재된 정체불명 ‘외계어’가 난무한 과거를 돌아보면 상전벽해다.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인기 DJ인 예지와 페기 구도 올해 낸 ‘One More(한 번만 더)’, ‘Itgehane(잊게 하네)’와 ‘Han Jan(한 잔)’에서 한국어 가사와 랩을 그대로 사용해 현지 팬들의 제창을 끌어낸다.

○ 한국어 가사 실시간 번역, 호기심 껑충

6일 방탄소년단의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한국어 가사에 크게 공감한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한국어 가사의 유통에는 최근 트위터에서 활약 중인 수십 개의 케이팝 번역 전문 계정이 큰 몫을 한다.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같은 인기 케이팝 번역 계정은 팔로어가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에 이른다. 웬만한 인기가수를 넘는 영향력이다. 노랫말부터 기사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여러 나라 언어로 옮기는 게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원천 콘텐츠인 한국어에 대한 위상이 올라간다. 방탄소년단의 신곡 ‘IDOL’이 나왔을 때도 해외 번역 계정들이 ‘얼쑤’의 뜻과 용례를 실시간으로 해외 팬들에게 전달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 팬들이 ‘unnie(언니)’ ‘sunbae(선배)’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 이상의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과 사용이 늘고 있다”고 했다.

○ 온전한 한국어 노래, 해외 팬과도 소통 확산

가요기획사들도 한국어 노래 제목과 가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0년대 초반 걸그룹 에프엑스가 주목받으며 ‘NU 예삐오’ ‘Hot Summer’ 등에서 독특한 말의 조합과 외계어 가사가 신선하게 느껴졌다면 요즘에는 온전하게 이해 가능한 한국어 문장이나 구절을 선호한다. 김 평론가는 “그 그룹만이 지닌 서사를 노래와 앨범에 걸쳐 어떻게 일관되게 전개하느냐가 팬들을 열광시키는 데 중요해졌다”며 “뜬금없이 ‘베이비(Baby)’를 연발하거나 기묘한 단어를 조합하는 단발성 자극보다는 온전한 한국어 가사의 가치가 올라간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아마존닷컴 등 해외 서점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출간된 ‘Learn Korean with BTS(BTS와 한국어 배우기)’가 올해 2편을 찍었으며, 외국인이 저술한 한국어 교재도 다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팝 딕셔너리’를 쓴 강우성 작가는 “현지 케이팝 팬이 그들 입장에서 직접 한국어 교육 책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해’ 같은 한국어가 인쇄된 티셔츠도 인기다. 강 작가는 “그간 영어권에서 일본어 티셔츠가 누리던 인기를 앞지르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글날#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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