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영변핵 폐기-종전선언’ 맞교환 제안에… 美 불편한 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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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협상]한미 비핵화 해법 온도차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을 뒤로 미루고 영변 핵시설 폐기를 종전선언의 대가로 맞바꾸자는 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의 제안은 기존 방식으로는 속도감 있는 비핵화에 이은 ‘연내 종전선언’이 어렵다는 정부의 판단이 녹아 있다. 신고→사찰→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의 첫 출발점인 핵심 조치를 협상 단계의 후순위로 빼놓아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을 종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요구해온 핵 신고서 제출보다 수위가 낮아진 데다 미국과도 최종 조율이 되지 않은 중재안인 만큼 실제 진전을 이뤄낼 대안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 뒤로 미뤄 버린 핵 신고

강 장관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내용을 설명하면서 ‘융통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완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거에 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포괄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융통성을 가지고 비핵화에 필요한 상응 조치를 매칭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제안을 내놓으면서 2008년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북한 핵시설 검증의 실패를 언급했다. 비핵화 시도가 매번 검증 단계에서 좌초됐던 만큼 이번에는 영변 핵시설이라는 특정 시설의 폐기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북한의 핵 신고서를 받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요구를 고집하는 게 북한을 더 자극할 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미국의 ‘상응 조치’와 바꿀 만한 등가성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일 방북을 앞두고 이미 이 같은 정부의 제안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다고 한다. 강 장관이 “미국도 융통성을 갖고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간의 생각이 꼭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일각에선 정부의 중재안이 비핵화의 핵심을 비껴간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008년 당시 비핵화 협상이 깨진 것은 북한이 검증·사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절차 진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핵심을 뒤로 미뤄 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 신중한 미국 앞에 하루 만에 신중해진 청와대

결국 강 장관이 말한 대로 빠른 비핵화가 진행될지는 폼페이오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어떤 합의를 끌어내느냐에 달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폐기·사찰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와 일정은 이날 양측의 협상 내용에 연동해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중간선거 전 (북-미 정상의) 만남이 이뤄진다는 게 썩 낙관적인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12월 서울 답방 전 11월 종전선언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기대와 바람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가 전날 북-미 정상회담의 조기 성사 기대감을 밝힌 지 하루 만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청와대가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수정하며 해명에 나선 것을 두고 미국의 신중한 기류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가 종전선언과 비핵화 해법에 대한 물밑 논의 과정을 앞질러서 공개하는 것에 대해 미 국무부 내에서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문병기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강경화#영변핵 폐기#종전선언#맞교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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