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도 대출도 막힌 1주택자… “집 넓혀 이사갈 꿈도 막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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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부동산대책 이후]실수요층 규제에 불만 고조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전용면적 59m²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회사원 윤모 씨(42)는 올 들어 꾸준히 청약시장 문을 두드렸다.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큰 집으로 옮겨가기 위해서였다. 올가을부터 분양될 서울 알짜 중대형 단지도 눈여겨봤다.

하지만 ‘9·13부동산대책’이 발표된 뒤 ‘새집 갈아타기’의 꿈이 희박해졌다. 정부가 추첨제로 공급하던 중대형 아파트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윤 씨는 “그나마 저렴하게 새집을 마련할 기회가 청약이었는데 당첨 가능성이 너무 낮아졌다”며 “왜 실수요자인 1주택자까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 보유자까지 9·13대책의 타깃으로 삼으면서 1주택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1주택자는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등 각종 대출이 막힌 것은 물론이고 청약시장에서도 소외됐다.

○ ‘새 집 갈아타기’ 손발 묶인 1주택자

청와대 국민청원과 인터넷 카페 등에는 이번 대책의 보완을 요구하거나 불만을 쏟아내는 1주택자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1주택자는 2016년 현재 785만 가구(전체 가구의 40.5%)로 무주택자(44.5%) 다음으로 많다.

16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주택자에게 불리해진 청약 추첨제를 보완해 달라고 요청하는 글만 10여 건에 이른다. 그동안 가점을 받기 어려운 1주택자는 추첨제로 나온 아파트에 청약해 새 집 마련 기회를 얻었다. 투기과열지구에선 전용 85m² 초과 아파트의 50%가, 조정대상지역에선 전용 85m² 이하 아파트 25% 및 85m² 초과 아파트 70%가 추첨제 물량이었다.

9·13대책 발표 당시 추첨제 물량 100%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하고 남은 것을 1주택자에게 주기로 했다. 이에 청약통장을 장기 보유한 1주택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16일 국토교통부는 추첨제 물량의 50∼70%를 무주택자에게 배정하고 30∼50%는 무주택자와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하지만 서울 등 인기 지역에서 1주택자가 무주택자를 제치고 당첨받을 확률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다.

청약 당첨이 멀어진 1주택자들은 기존 주택 매입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1주택자도 신규 주택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등 실수요에 한해 대출이 허용되지만 이 경우도 새집을 산 뒤 2년 안에 기존 집을 팔아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1주택자인 홍모 씨(40)는 “분양을 받은 뒤 3, 4년간 자금을 마련해 새집으로 옮겨가고 싶다”며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텐데 일률적으로 2년 내 매도로 못 박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국민 40% 1주택자, 투기세력 아냐”

전세대출을 받아 이사를 하거나 집을 넓히려던 1주택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부 합산 연소득 1억 원을 초과하는 1주택자는 10월부터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아파트를 갖고 있는 최모 씨(35·여)는 내년 초에 아기가 태어나면 전세대출을 받아 친정이 있는 서울 양천구에 전셋집을 얻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부가 버는 소득이 1억 원을 조금 넘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최 씨는 “아기가 크면 다시 동탄으로 돌아올 생각인데 보유한 아파트를 팔 수도 없고 전세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여기에다 1주택자가 이미 갖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대출 한도 1억 원’이라는 제한이 생겼다. 은퇴 생활자인 이모 씨(66)는 “급히 큰돈이 필요해 기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다 틀어졌다”고 말했다.

1주택자에게 주던 양도소득세 혜택도 대폭 축소됐다. 지금까지 실거래가 9억 원이 넘는 집을 가진 1주택자는 10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 차익의 최대 8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2년 이상 거주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 절반에 가까운 1주택자 중 투기 세력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집값 잡으려다가 대다수 1주택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실수요자, 지방 주택자 등의 1주택자가 받는 영향을 세밀히 분석해 이번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혁 gun@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청약도 대출도 막힌 1주택자#실수요층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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