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선생님을 추모하며…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킨, 단 한 명의 완벽한 예술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소설가 최인훈 1934∼2018]
대학 새내기들에게 삶과 예술을 일깨워주시고 산수연날 찾아온 제자들
두 손 꼭 잡아주신 선생님 그 따스함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윤지훈 사진작가 제공
윤지훈 사진작가 제공
완벽한 예술가, 최인훈 선생님!

1980년대 말 남산의 서울예대 교실 풍경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전국에서 글 좀 쓰겠다고 모여든 학생들은 87년 항쟁의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실에서 시위 현장인 명동으로 나가고 싶어 늘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지금이었다면 최인훈 선생님의 강의를 좀 알아들었겠지만 그때 나는 선생님의 강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선생님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고 과제를 내주시면 며칠씩 밤을 새워야 해낼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그대로 옮겨 적어도 문법적으로나 논리로나 오류가 없는 문장이 될 정도로 완벽했는데, 그런 분이 봤을 때 우리의 산문이란 얼마나 부족했을까. 최인훈이란 분이 두 다리로 캠퍼스를 걸어 지나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을 받곤 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예술적 주체를 강조하셨고, 다른 자리가 아닌 예술가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2015년 5월 15일 명동에서 선생님의 팔순연과 사은회가 열렸다. 불광동에 사실 때 댁에 한두 번 찾아뵌 뒤로는 자주 뵙지를 못하던 때였다. 사실 선생님은 농담을 잘하셨다. 불광동 댁에 찾아뵈었을 때도, 명동의 산수연(傘壽宴·팔순 잔치) 자리에서도 그 자리에 온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말씀 내내 손을 꼭 잡아주셨는데 아직도 그 따스함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또 다른 길로 나설 준비를 하시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실까, 부족한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몇 년 전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인 투먼(圖們)에 갔을 때, 거기서 최인훈 선생님을 생각했다. 회령시가 한눈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우리보다 앞선 세대 분들의 삶이란 늘 경외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누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쓸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그 무엇에도 자기 자신을 쉽게 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최인훈 선생님을 존경한다. 사는 일도 그렇지만 쓰는 일에도 지름길이란 없다. 선생님은 늘 사유하면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남산에서 처음 만난 완벽한 예술가 최인훈 선생님, 선생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몰라 늘 마음만 졸였지만 선생님은 영원히 내게 단 한 명의 완벽한 예술가이시다. 팔순 잔치에서 직접 들었던 선생님의 소설 ‘바다의 편지’ 낭송을 떠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최인훈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다니,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다.

소설가 강영숙(고 최인훈 작가의 제자)
#최인훈#강영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