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찍고, 농사짓고… 취업만 정답? 우린 ‘딴길’로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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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아지트’가 된 청년센터

5일 대구 중구의 대구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 청년들이 말린 꽃과 버려진 포장재를 이용해 엽서를 만들고 있다. 이 수업은 대구 청년센터의 청년학교 ‘딴길’의 ‘업사이클링디자인학과’ 일환으로 진행됐다. 대구=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일 대구 중구의 대구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 청년들이 말린 꽃과 버려진 포장재를 이용해 엽서를 만들고 있다. 이 수업은 대구 청년센터의 청년학교 ‘딴길’의 ‘업사이클링디자인학과’ 일환으로 진행됐다. 대구=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장맛비가 쏟아지던 5일.

대구 중구의 한 작은 공방에서 청년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분 하나 없이 마른 꽃, 포장에 쓰였던 구겨진 종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운명이던 폐품들에 청년들의 손길이 더해지니 세련된 엽서로 재탄생했다. 친환경 제품이 각광받는 시대에 꼭 필요한 ‘업사이클링’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의 모습이다.

대구 청년센터는 실용성에 재미를 더한 다양한 학과를 갖춘 청년학교를 3년째 운영 중이다. 학교 이름은 ‘딴길’이다. 좋은 대학이나 직장만이 성공이라는 공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경험과 교육을 얻어가라는 뜻이다. 업사이클링 교육을 담당하는 사공영미 대구문화예술 창작공간 대표는 “지난해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 중엔 이 분야에 흥미를 느껴 강사가 되기도 했다”며 “학생들 스스로 재능과 적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딴길’에는 올해 총 11개 학과가 개설됐다. ‘방구석스필버그학과’(영화제작) ‘삼시세끼학과’(농업) ‘메이커학과’(사물인터넷 활용 제품개발) 등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학교 정규교육과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원생 이지은 씨(25)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업사이클링디자인학과’에 참여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지만 전공인 사범계열과는 거리가 멀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 씨는 “나중에 어떤 것을 하더라도 손기술을 활용해 부업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공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송지은 씨(27)는 “취업 준비만 하면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오전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면서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화학공학을 전공해 생산관리직을 준비 중인 이동륜 씨(28)는 “무언가를 만들며 집중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된다는 게 이 수업의 장점”이라며 “배움에 호기심이 많고 스트레스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줄 안다는 점을 입사지원서에 잘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청년센터 ‘무중력지대’는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청년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무중력지대’가 개최했던 플리마켓 현장. 사진 출처 무중력지대 페이스북
서울 양천구 청년센터 ‘무중력지대’는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청년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무중력지대’가 개최했던 플리마켓 현장. 사진 출처 무중력지대 페이스북
보통 지방자치단체 청년센터는 취업알선처럼 ‘청년 일자리’에 직접 관련된 프로그램만 제공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런 통념은 청년센터에 대한 벽을 높이고, 외면하게 만든다. 청년들이 부담 없이 지역사회 안에서 동아리나 교육활동을 지원받으며 자연스럽게 센터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구 청년센터에선 청년학교 ‘딴길’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갭 이어(gap year)’도 지원한다. 갭 이어란 대입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진로 탐색을 위해 갖는 휴식시간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선 이런 선택을 하는 학생들을 찾기 어렵다. 대구 청년센터는 3주간 3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하며 단기 갭 이어를 장려하고 있다. 청년들 스스로 정책을 만들어 시에 제안하는 ‘청년ON’ 프로그램도 있다.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은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당장 취업하라고 압박하는 것보다 본인들 스스로 진로 탐색을 하도록 돕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인식 변화와 맞물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젊은이들을 공략하는 지자체 운영 청년센터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청년센터 ‘무중력지대’에는 지역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모임을 갖거나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공유공간이 있다.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스튜디오도 저렴한 값에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엔 매주 화요일 밤마다 가상통화, 투자, 돈 관리법 등 사회초년생들에게 필요한 금융기초 상식을 알려주는 강좌도 진행했다. 이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영되는 영화도 모두 청년들의 논의를 거쳐 결정된 작품들이다.

문유진 양천 무중력지대 센터장은 “지역사회에 파편화된 청년들이 한곳에 모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게 목표”라며 “센터 이름인 ‘무중력’ 역시 사회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청년으로서 활동해보자는 취지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대구청년센터#청년학교 딴길#업사이클링디자인학과#무중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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