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JP 타계… 한국 보수, 榮辱의 시대 넘어 새로운 지평 열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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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의 ‘3김’ 중 마지막 생존자인 JP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겐 흔히 우리 현대 정치사의 영(榮)과 욕(辱)을 함께한 정치인이란 수식어가 따르는 만큼 그의 공과(功過)를 두고도 크게 엇갈리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한 그는 필생의 라이벌 YS, DJ와 달리 권력의 정점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한국 정치사의 ‘영원한 2인자’로서 일세를 풍미했다.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JP에겐 특별한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창출의 기획자로서 JP는 안정적인 정치를 지향하다가 권력의 견제도 수없이 받았다. 민주화 시대에 들어서도 YS 대통령 아래선 여당 대표를, DJ 대통령 아래선 국무총리를 지내며 권력 핵심에서 자리를 지켰다. 끊임없이 권력 근처에 머무는 그의 처세는 많은 비판도 낳았지만, 그가 보여준 유연한 정치 행보는 우리 정치사에 독보적인 발자취로 남을 것이다.

JP는 근대화를 이끈 ‘보수 원조’를 내세웠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화를 이끈 YS, DJ와도 기꺼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번번이 도중에 결별함으로써 YS나 DJ의 오점에서 비켜서는 면모를 보였다. 그가 YS를 떠나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둔 자민련을 창당하고 DJP연합을 통한 공동정부를 구성한 것은 최근까지도 우리 정치의 새로운 시도로 회자되던 ‘제3지대 정치’의 선례였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변화하는 기류에 너무 쉽게 순응하던 그의 처신은 오늘날 길 잃은 보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JP는 때로는 교양 있는 언어로, 때로는 쉬운 일상 언어로 반대자도 무릎을 치게 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의 대가였다. 특히 말년에 남긴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도 되새겨볼 명언들이었다. 그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정치는) 지고서 이겨야 한다”고도 했다. 오늘날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를 향해 악담과 막말을 주저하지 않는 삭막한 정치판이 되새겨 볼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아닐 수 없다.

위기는 낡은 것은 갔지만 아직 새것이 오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진보진영은 DJ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 정부를 맞아 ‘진보의 시대’를 구가하며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은 3당 합당에 합류한 YS 이후 이명박 박근혜 시대로 이어졌으나 지금은 궤멸의 위기를 맞았다. 좌우의 날개가 균형을 잃으면 나라도 균형을 잃는다. YS, DJ와 함께 지나간 시대의 정치인 JP도 떠났다. JP가 우리 정치사에 남긴 흔적은 여러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좋든 싫든 그에 대한 엄정한 평가도 새로운 시대를 열 우리 정치의 몫으로 남겨졌다.
#김종필 타계#3김#보수 원조#제3지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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