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세 어르신도, 19세 대학생도, 외국인도… “참일꾼 뽑자” 한 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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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13 지방선거]투표현장 스케치


13일 오후 1시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고등학교. 6·13지방선거 투표소인 1학년 1반 교실에 유권자 2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들의 손에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 아닌 다른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바로 외국인등록증이다. 중간중간 중국말이 들렸다. 투표를 기다리던 20여 명 중 대부분은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었다. 투표관리인이 이들에게 다가와 투표 방법을 알려주자 이들은 한국어로 “알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 유권자보다 더 진지한 모습이었다.

○ 외국인부터 114세 노인까지 ‘소중한 한 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와 달리 지방선거 때는 외국인도 투표할 수 있다. 2006년부터 한국 영주권을 취득한 뒤 3년이 지난 외국인(만 19세 이상)도 해당 지방자치단체 외국인등록대장에 이름을 올리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날 원곡고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직장에 출근했다가 짬을 내서 투표소를 찾았다. 그래서 꼭 챙기는 것이 있었다. 바로 투표 확인증이다. 투표를 마친 뒤 곳곳에서 “확인증 받았냐”고 묻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투표소에서 받은 확인증을 회사에 내기 위해서다. 이들을 안내하던 한 자원봉사자는 “외국인인데도 생각보다 한국의 투표 절차나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중국인 황향식 씨(60·여)는 “투표권이 이번에 생겼는데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기분”이라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고사카 하루나(小坂春奈·41·여) 씨는 “한국에 살며 처음 투표권을 가지게 됐다. 일본에선 아직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는데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에선 114세 이용금 할머니가 딸과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부산 영도구에선 “이웃집의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투표를 하고 싶어 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80대 할머니를 경찰차에 태워 투표소에 데려다줬다.

만 19세가 된 새내기 유권자도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소로 향했다. 이번 선거에선 1999년 6월 14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이 투표권을 가졌다. 1999년 6월 5일생인 대학생 구민정 씨는 “방송에 나와 인지도를 쌓은 사람들은 실제 공약 등에 전문성이 있는지 더 꼼꼼히 봐야 할 것 같다”며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생애 첫 투표를 기념하는 인증샷 릴레이가 펼쳐졌다.

○ 만취 난동, 투표지 훼손 등 곳곳서 해프닝

이날 투표는 차분한 가운데 축제 분위기 속에 치러졌지만 곳곳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오후 2시 52분경 서울 은평구의 한 투표소에선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난동을 부렸다. 엉뚱한 투표소를 찾았다가 투표가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자 “왜 투표를 못 하게 하느냐”며 한참 동안 고함을 지르다가 집에 돌아갔다. 울산에서는 70대 남성이 투표를 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다가 집으로 갔다. 경남 산청군에선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50대 여성이 심정지로 쓰러지기도 했다. 부산 동구에선 “우리나라에 당이 2개밖에 없냐”고 항의하며 투표용지를 훼손한 A 씨(53)가 경찰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동구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서만 후보를 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 / 안산=김정훈 기자
#6·13 지방선거#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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