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귀빈실-VIP출입구서 ‘예우’… 보안검색은 약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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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국회 특권 내려놓기 어디까지 왔나


《#1 올해 봄 여당 A 의원과 야당 B 의원은 7박 9일의 중남미 출장 과정에서 이틀 동안 공식 일정에 불참하고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관광을 떠났다. 두 의원은 “주말을 이용해 자비로 다녀왔다”고 해명했지만 재외 공공기관 측에서 마련한 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과의 만남을 기대했던 브라질 교민들은 허탈해했다고 한다.

#2 여당 중진 C 의원은 2016년 미국 출장 과정에 부인과 동행했다. 공식 일정 중 딸이 살고 있는 도시에 하루 더 머물렀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야당은 “출장비를 사적으로 전용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 해외출장은 20대 국회의원의 ‘오아시스’

요즘 국회의원들에게 해외출장은 일종의 오아시스로 통한다. 한 재선 의원은 “이른바 청탁금지법 통과 이후 해외 시찰 기회가 줄어든 게 사실”이라면서도 “국회 입성 후 의원에게 주는 혜택을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게 해외출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의원은 해외출장을 위해 공항에 들어선 순간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공항 귀빈실과 VIP 출입구를 이용할 수 있다. 출국 때 공항수속과 보안검색도 약식으로만 받는다. 의원 눈치를 봐야 하는 피감기관에서는 의원 항공기 좌석도 비즈니스석을 마련해 둔다.

현지에 도착하면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국회의원의 일정은 국회 파견관, 현지 대사관 직원들은 물론이고 KOTRA,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등 공공기관 직원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통상 현지 대사관 직원이 의원을 영접하며, 현지 주재 기업 법인장 등과의 오·만찬과 관광 일정도 포함된다. 의원 여러 명이 동반하면 일부는 공식 일정에서 빠지고 개인 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공공기관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20대 국회 들어서도 출장 온 의원들이 ‘방을 바꿔 달라’ ‘식사에 한식을 꼭 넣어라’ 등과 같은 민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 해외출장 규정은 무용지물

지난달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 전까지 국회에는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

1991년 ‘국회의원 윤리강령’이 제정됐지만 ‘의원으로서의 품위 유지, 공익 우선, 청렴, 적법절차의 준수’ 같은 추상적인 문구로 채워졌다. ‘국회의원 윤리 실천규범’에는 ‘국회의원은 직무상 국외활동을 할 경우 성실히 보고 또는 신고해야 한다’(제13조 1항), ‘국회의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장기간의 해외활동이나 체류를 해서는 안 된다’(제13조 2항)란 조항이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 근거가 전혀 없다. 사실상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을 제한할 강제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비용 지급처에 따른 출장 허용가능 기간, 사후 출장보고서 및 비용 명세서 제출 의무, 서류 허위 제출 시 처벌 규정까지 명시한 미국 하원윤리지침서와는 대조적이다.

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해 3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4촌 이내 친인척 보좌관 채용을 금지하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문제는 성역으로 남아 있었다. 김 전 원장의 외유성 출장 논란 직후 여야 정치권 일각에선 국회의원 해외출장에 대해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피감기관 비용으로 해외출장을 간 사례가 있는데, 이 같은 내용이 자체 조사 결과로 드러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19, 20대 국회의원이 300여 개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235건의 출장을 갔고, 출장비만 약 15억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 뒤늦게 사전 승인제 도입했지만…

20대 국회는 김 전 원장의 외유성 출장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의원 출장제도 사전 승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피감기관 비용으로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가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국가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될 때만 사전 승인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 승인제만으로는 국회의원의 일탈을 제대로 감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처럼 사후 비용 명세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허위 사실을 기재했을 때는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외부기관 비용이 아니라 자비로 간 해외출장도 국회 보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의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매년 정기적으로 해외출장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규정이 개선됐지만 국회의원들의 자정 노력 없이는 소용이 없다. 결국 국민들에게 출장비 명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근형 noel@donga.com·최고야 기자
#국회의원#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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