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비수기 뚜렷한 업종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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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주 52시간으로 단축]기업 규모-업종별로 온도차

주요 기업 인사팀에 27일은 어느 날보다 ‘긴 하루’였다. 새벽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 법안 때문이었다. 빙과류 업체 관계자는 “7월은 아이스크림 성수기라 생산라인에선 초과근무를 해야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다. 당장 인력 공백이 문제라 급히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 취지에는 일단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기업 규모와 상황에 따른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에서 환영하지만 관공서 공휴일 규정을 민간 기업에 적용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해 기업 부담이 늘어났다.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기업 중소기업 간 온도차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은 이미 근로시간 단축 도입에 대비해왔다. 신세계그룹은 주 52시간보다 더 나아가 주 35시간제를 올해 1월부터 도입했다. 삼성전자도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무로 바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예행연습을 해왔고 올해 초에는 스스로 근로시간을 모니터링하고 반차 결재 등을 받을 수 있도록 근태관리 시스템을 개편했다”고 했다.

경영계와 노동계 간 최대 갈등 요소였던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 문제는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150%가 유지됐다. 4대 그룹 관계자는 “대기업은 노사 협의에 따라 휴일근로 수당을 현행법인 통상임금의 150% 이상을 주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영향이 없다는 의미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14년 전 주 5일 근무 도입 당시 내부 반발이 많았으나 사회 문화적인 요구에 따라 정착됐다. 근로시간 단축이 10년 내에 새로운 조직 문화로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이 주 최장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후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연간 12조1000억 원으로 집계했다. 이 중 71%(8조600억 원)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 부담이다. 중소기업계는 개정안에 공휴일 유급화가 포함된 것도 부담이라고 한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영세 중소기업은 인력 확보도 걱정이다. 플라스틱 사출 및 도금 전문기업 에스케이씨 신정기 대표는 “근로시간을 줄인 만큼 설비를 늘리든지 인력을 늘려야 한다. 비용은 늘어나고 올 사람 구하기도 힘드니 이중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근로시간 규정에서 제외되는 특례업종에서 소매업, 음식점 및 주점업, 미용·욕탕업이 빠지자 소상공인들도 반발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까지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되므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집중 근무직과 저임금자 고민

“저는 밤에 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밖에서 산책하며 영감도 받고요.”

자동차 디자이너인 A 씨는 “성과 중심으로 일해 왔는데 앞으로 근무시간을 어떻게 계산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A 씨 같은 디자이너나 연구개발직은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전 집중적으로 일하는 시기가 있다. 예컨대 대규모 해외 전시회에 스마트폰 신제품을 선보이려면 개발팀은 개막 직전 한 달여는 밤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빙과업체는 물론이고 에어컨 제조업체도 여름철 생산 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올 초부터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그래도 초과 근무 없이 여름철 에어컨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재계는 ‘평균 주 52시간’ 적용 기간을 현행 3개월 평균에서 1년 평균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어 주 평균 52시간을 맞추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을 2022년 12월까지 미뤘는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시간외수당에 의존해온 저임금자도 고민이 많다. 대형마트 계산원 B 씨는 “저임금 근로자는 어쩔 수 없이 쉬는 것보다 일을 더 하고 돈으로 받고 싶다”고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올해부터 운전기사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춰봤다. 그러자 한때 5000만 원이던 기사 연봉이 3600만 원으로 줄어들어 몰래 ‘투잡’을 알아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김지현·강승현 기자
#성수기#비수기#탄력적 근로시간제#52시간#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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