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악용되는 고용허가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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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 동의해야 직장 이동 가능
성폭력 등 경우엔 예외 뒀지만… ‘근무지 이탈’로 허위 신고해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 일쑤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데는 ‘고용허가제’가 한 원인이 되고 있다.

2004년 8월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외국인의 국내 고용을 지원해 불법 체류자를 줄인다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인권단체들은 이 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에서 3년간 체류하며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3번 바꿀 수 있는데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마저도 사업주가 동의를 해줘야 일터를 옮길 수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경우엔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했지만 이주민 지원 단체들은 이 규정이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에 이의를 제기하면 사업주들은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고용당국에 허위 신고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탈 신고가 접수된 뒤 고용센터의 연락이 닿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대해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위원회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용자에게 종속되게 하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착취당하는 구조를 만들고 강제 노동에 이르게 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 폐지를 권고했다. 이주단체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약 27만6000명의 외국인이 고용허가제로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고용허가제#노예제#이주여성#미투#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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