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사교육 조장” 반발에 속도조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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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등 영어수업 금지 일단 보류
학부모들 “月3만, 4만원 수업… 이젠 비싼 학원으로 가라는 얘기”

6세 딸을 둔 이모 씨(35·여·서울 영등포구)는 최근 또래 엄마들과 ‘어떤 영어학원이 좋으냐’는 대화를 자주 한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발표한 뒤부터다.

이 씨는 “어린이집에서 3만 원을 내고 (아이가) 영어를 배워 왔는데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몇 배나 비싼 영어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이 씨는 학원 라이딩(차로 데려다주기)도 힘들어 다른 아이들 모두 영어학원에 가고 딸 혼자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거리다.

정부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수업(특별활동)을 금지하되 사교육비 걱정이 큰 학부모들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교육부는 누리과정(만 3∼5세 공통교육)을 놀이 중심으로 전환하고 유치원·영어 수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셌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수업은 3만∼4만 원대의 싼 비용으로 이뤄져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6세 딸을 유치원에 보낸 김모 씨(33·여·경기 수원시)는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영어는 놀이수업으로 이뤄진다”며 “공교육 영어가 아니라 사교육 영어가 문제인데 정부가 오히려 영어학원을 가라고 등 떠미는 격”이라고 정부 방침을 꼬집었다. 김용희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장은 “유치원과 달리 돌봄 시간이 긴 어린이집은 다양한 특별활동에 대한 요구가 높다”며 “(이번 금지 방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치원·어린이집뿐만 아니라 기존에 금지 방침이 확정된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공교육 안에서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계층 간 교육 격차가 오히려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반면 교육부는 영어수업 금지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세종과 제주는 이미 교육감 권한으로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을 금지하고 있는데 ‘학원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영·유아 영어 조기교육도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보고 있다. 2015년 전국보육실태 조사에 따르면 특별활동 이용비율(중복응답)에서 어린이집 원아의 45.4%, 유치원 원아의 46.9%가 영어를 배우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2명 중 1명은 영어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영어 조기교육의 효과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김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영어교육 시작 시기와 습득 속도의 상관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 학습으로 유아들이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이미지 기자
#영어수업#유치원#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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