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만에 탈출할수 있는 문, 5m 앞에 두고도 찾을수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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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피해 컸던 2층 여탕 현장 확인

‘8초.’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2층 비상구를 통해 1층으로 탈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사우나(여탕)가 있는 2층에서 희생된 사람은 20명. 21일 화재 때 정확한 비상구만 찾았다면 대부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층 비상구는 잠겨있었다. 탈출로는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늘 비상구를 개방했던 3층 사우나 남탕 이용객은 대부분 초기에 탈출했다. 희생자는 없었다. 비상구 하나가 생사를 갈랐다.

○ 2층에서 더 살릴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안으로부터 잠겨있던 2층 여탕 비상구 철문은 22일 활짝 열려있었다. 검게 그을린 철문 옆 벽면에는 하얀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화재 당시 비상계단으로 올라간 소방관들이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국으로 보인다. 문을 강제로 연 듯 잠금장치 부분도 찌그러져 있었다.

비상구 바로 앞에는 손님들의 목욕용품을 보관하는 2m 높이의 철제 수납장이 있다. 문 양쪽 그리고 맞은편에도 있다. 비상구 폭이 1m가량이지만 수납장 탓에 50cm 남짓으로 좁아진 상태였다. 여탕 내부는 1층에서 올라온 연기 탓에 곳곳에 그을음 투성이였다. 바닥엔 소방용수가 흥건했다. 하지만 불에 탄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머리 말리는 곳에 있는 헤어드라이어와 선풍기도 멀쩡했다. 화재 열기가 전혀 미치지 않은 듯 전신거울도 전혀 깨지지 않은 채 온전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화재 당시 사우나 내부에는 10명이 넘는 손님이 있었다. 목욕탕 특성상 외부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사이렌이 울렸지만 대부분 알아채지 못했다. 한 50대 생존자는 “나와 카운터 여직원이 소리 질렀는데 탕 안에 있는 손님들은 대부분 씻느라 정신이 없어 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탕 안에 있던 손님 대부분은 화재를 뒤늦게 알고 빠져나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계단으로 이어지는 사우나 정문 앞에서는 사망자 11명이 발견됐다. 이 문은 작은 버튼을 눌러야 열린다. 긴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사우나 관계자는 “길쭉하게 생긴 출입문 버튼이 평소 잘 작동하지 않아 ‘여기를 누르면 된다’며 빨간 스티커까지 붙여 놨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망자는 탈의실 주변에서 발견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비상구에서 5m 남짓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비상구만 찾았다면 살 수 있었다. 건물주 이모 씨(53)는 22일 “손님들이 목욕용품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민원을 제기해 비상구 문을 잠그고 철제 수납장을 놓았다”고 말했다.

○ “1초만 늦었어도 죽었다”

같은 사우나가 있는 3층 남탕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3층 비상구 앞에는 이발소가 있다. 주변이 완전히 개방돼 있다. 휴게실 등에서도 비상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24시간 열려 있었다. 사고 당시 이발사 김모 씨(63)가 비상구 쪽으로 손님들을 안내해 남탕 이용객 중에는 사망자가 거의 없었다. 만약 여탕 이용객이 바로 아래층 비상구를 통해 나왔다면 같은 비상계단을 이용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김 씨는 “비상구 위치가 머릿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손님들을 유도한 뒤 마지막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2층 사우나에 있던 여성 손님 중에는 정문을 나선 뒤 중앙계단으로 탈출을 시도한 사람도 많았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1층과 2층 사이 계단까지 내려갔다가 자욱한 연기에 막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다 통유리를 깨뜨리기 위해 다급한 마음에 화분을 집어던졌지만 소용없었다. 강화유리였다.

마지막 살 길은 가로 1m, 세로 70cm 크기의 미닫이 창문. 여탕 이용객들은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며 창문을 열고 그 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2m 아래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4∼7층 헬스클럽에서 내려온 일부 남성은 2층 여탕 이용객이 먼저 탈출하도록 도왔다. 김모 씨(68·여)는 “내가 창문 밖으로 나갈 때 뒤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1초만 늦었어도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방화 관리 상태 ‘엉망’

스포츠센터 건물은 지난달 말 소방점검을 받았다. 본보가 확인한 점검결과에 따르면 1층 출입구와 지하 기계실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보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인명 피해를 키운 화재감지기 회로는 18곳이나 끊어져 있었다. 새로 설치가 필요한 지점이 3곳, 작동 불량이 5곳이었다. 또 피난 유도등은 1, 3, 4, 6, 7층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계단 등에 있는 소화기를 교체하고 사이렌 작동이 불량해 보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점검결과는 화재가 나기 이틀 전에야 건물주에게 전해졌다.

제천=김동혁 기자 hack@donga.com·송영찬·이민준 기자
#제천#화재#참사#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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