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에서 죽음까지 카톡 공유… 주민들 공포 증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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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인’으로 바뀐 일상]전문가들이 본 원인과 해법

매일 오가던 공간이 잔혹한 범죄의 현장이 됐다. 끔찍한 범행 과정이 주민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무엇보다 범인은 여성, 그것도 10대 청소년이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서 포착된 세 가지 충격 요인이다. 비슷한 강력사건의 경우 이런 충격 요인은 한두 개 정도다. 전문가들이 이웃 주민의 트라우마를 ‘재난’ 수준으로 보는 이유다.

○ “전쟁 트라우마보다 심각”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일상의 파괴’다. 공원과 엘리베이터는 유괴 현장, 고추 말리던 옥상은 시신 유기 현장이 된 걸 견디기 힘든 것이다. 연평해전 참전 장병을 상담했던 한 전문가는 주민들의 트라우마 상태가 심각할 뿐 아니라 치료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위협 요인이 사라져 트라우마 치유가 가능하지만 이번 사건은 일상의 모든 공간이 범죄의 기억을 유발하기 때문에 곳곳이 위협 요인”이라며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아이 실종부터 죽음까지 모든 상황을 공유한 것도 공포를 증폭시킨 원인이다. 2014년 온 국민이 세월호 침몰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것과 비슷하다. 피해 가족과의 친밀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많은 경찰이 투입됐는데도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세월호보다 더 심각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한창수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민들은 범행 순간을 자기 경험처럼 느꼈을 것”이라며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주민 모두가 공유하던 일상 공간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세월호 때보다 더 장기간 치료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이 범인으로 밝혀진 뒤 누구도 믿기 어려운 불신과 불안이 공동체를 짓누르고 있다. 사건 직후 주민을 상담한 이승연 지역보건소 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이른바 ‘마음속 위험인물’을 정할 때 10대 여성(여고생)은 가장 순위가 낮은 편인데 이번 사건은 그런 인식을 깨버린 것”이라며 “누구라도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주민들의 ‘마음속 위험인물’ 폭이 확대되면 불신과 불안이 더 커지면서 공동체 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 ‘도피 대신 공동 치유’ 필요

현실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건 어떨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지영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명히 치유는 가능하다”며 “힘들다고 동네를 떠나면 언젠가는 트라우마가 발현되기 때문에 주민들이 다 같이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끊임없이 ‘이곳은 안전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며 “지역사회가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주민들이 모여서 경험을 이야기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토크콘서트 등 공적인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천=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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