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적 인맥 ‘양날의 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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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청취’ 창구로 활용한 YS… 국정농단 빌미 준 박근혜 前대통령
노무현 정권 ‘강금원 부통령’ 논란… 이명박 정부땐 ‘고소영-SKT’ 구설

대통령에게 사적 인맥은 양날의 칼이다. 잘 활용하면 청와대 비서진과 관료, 정치인에게 겹겹이 둘러싸인 대통령에게 ‘날것’의 민심을 들려주는 ‘민간 참모’가 될 수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30년 넘게 정치를 하며 두꺼운 사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YS는 민심을 듣고 싶을 때면 이들의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두 권의 노트’를 이용했다. 오랜 친구에서부터 행사장에서 악수만 나눈 인사까지 다양했다. YS는 정보기관의 보고서가 이런저런 이유로 바닥 민심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여겼다. 이에 국정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전국의 지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민심을 물은 것이다.

서울 시내 P호텔의 이발사도 때때로 YS의 전화를 받았다. YS가 야당 시절부터 단골로 머리를 맡기던 이발사였다. 어느 날 그 이발사가 YS의 전화를 받으며 거듭 “예, 각하”라고 하자 한 손님이 그를 밖으로 불러내서는 “대통령하고 친하냐”며 읍소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중소기업 사장인데 대기업에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YS는 이발사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YS의 이발사 사례는 사적 인맥에 관한 긍정적인 일화다. 실세라는 이름으로 국정이나 이권에 개입하며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든 사례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후원자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의 인연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은 1998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당시 선거사무실로 찾아온 강 전 회장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후 강 전 회장의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후원이 이어졌다.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은 “자금도, 정치적 배경도 없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물론 국민이었지만, 만약 강금원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고 홈페이지에 썼다.

강 전 회장은 2004년 정치자금법 위반, 2009년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12년 그의 별세 직후 “‘바보 노무현’의 곁을 지킨 ‘바보 강금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이 노무현 정권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도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을 “대통령 측근들의 군기반장”이라거나 “대통령과 서로 막말도 할 수 있는 사이”라며 힘을 과시해 ‘사설 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사적 인맥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세간에선 파워엘리트 인맥의 키워드로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SKT(소망교회, 고려대, 테니스)’를 꼽기도 했다. 모두 MB가 애착을 갖는 사적 인맥을 일컫는 말이었다. 소망교회 인맥이 공적인 자리에 여럿 들어가자 집권 초기 소망교회 신도가 부쩍 늘기도 했다. 소망교회를 인맥을 쌓는 장으로 생각한 총선 예비 후보, 관료들이 ‘줄’을 대려고 한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앞으로는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는 선언까지 나왔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얘기다. 지난해 11월 두 번째 사과에 나선 박 전 대통령은 “(최 씨는)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사적 인맥의 어두운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인(私人)이 공조직을 통해 국정 운영 전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다 각종 이권 개입까지 ‘백화점’식이었다.

역대 정부의 비선 실세로 꼽히는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장관, YS의 차남 ‘소산(小山·YS 아호 거산을 빗댐)’ 현철 씨, 이 전 대통령의 친형 ‘만사형통(萬事兄通)’ 이상득 전 의원 등과 달리 공직이나 정치 경험도 전무한 최 씨와 그 주변 인물들이 국정을 농단한 것이어서 국민들은 더 분노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대통령#사적 인맥#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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