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번엔 무사히…” 3년 기다림보다 길었던 하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애타는 미수습자 9명 가족


“이제는 가족을 찾아서 집에 가고 싶습니다….”

22일 오전 9시 담담한 표정으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시험 인양을 한 시간 앞둔 때였다. 팽목항 현장은 이들의 오랜 서러움과 간절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전날까지 휘몰아치던 바닷바람도 이날은 잠잠했다.

○ 포기할 수 없던 3년의 기다림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부터 꼬박 1072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22일은 가족들에게 1072일보다 더 긴 하루였다. 전날부터 밤을 꼬박 새운 미수습자 가족들은 하루 종일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19일 시도하려던 인양 시도가 기상 악화로 취소된 적이 있어 불안감이 더 컸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계는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때부터 멈췄다. 권재근 씨의 친형 권오복 씨(63)는 가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생업을 접고 사고 해역 근처를 지켜왔다. 11m²의 작고 추운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내는 통에 몸이 상하는 것도 몰랐다. 여기저기 놓인 약 봉투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나의 건강보다는 시험 인양에 이어 본 인양이 성공하기만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살가웠던 조은화 양(단원고)의 어머니 이금희 씨(48)도 이날 애간장이 녹았다.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조 양은 부모를 배려하는 정 많은 딸이었다. 엄마가 걱정할까 ‘버스에 탔다’ ‘어디를 지났다’ ‘학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자주 보냈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얘기하는 한없이 다정했던 딸이었다. 이 씨는 “너무 추운데, 너무 지저분한 곳에, 너무 오랫동안 있게 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또 “3년 전 4월 16일에 머물러 있는 엄마 아빠 가족들을 4월 17일로 보내주는 게 세월호 참사에 아파하고 같이 울었던 분들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다윤 양(단원고)의 어머니인 박은미 씨(48)도 세월호가 가라앉은 검은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루도 마를 날 없던 두 눈가에선 여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3년 전 수학여행 길에서 아버지의 검정 모자가 마음에 든다며 빌려갔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의 모자, 허 양이 입었던 옷과 신발까지 모두 발견됐지만 허 양만 아직 바닷속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혹여 딸이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때때로 배 난간에 몸을 기대 바다를 주시했다.

미수습자 가족 7명은 이날 오전 10시 어업지도선 무궁화2호와 무궁화23호에 각각 올라타고 인양 현장 부근으로 이동해 선체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172명만이 구조됐다. 295명이 숨졌고 9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권 씨와 조 양, 허 양 외에 당시 단원고 학생 남현철 박영인 군, 교사 양승진 고창석 씨, 권 씨의 아들 혁규 군, 이영숙 씨(일반인)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 모두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시신을 찾은 유가족들도 시험 인양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왔다. 세월호 유가족인 정성욱 씨(47)는 “오늘을 또 넘길까봐, 그렇게 될까봐 너무 두렵다”며 애를 태웠다.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세월호 합동분향소에도 유가족의 발길이 이어졌다. 4월 벚꽃만 봐도 딸 생각이 나서 괴롭다는 세월호 유가족 유영민 씨(49)는 “인양을 통해 실종자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어느 누구도 다른 우선순위를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을 앗아간 세월호가 너무나 밉지만 실종자 수습과 진실 규명을 위해 반드시 조속한 인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원고 학생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가방이나 소매 끝에 달린 노란 리본에서 인양을 염원하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 현장을 지킨 자원봉사자 김모 씨(40)도 “세월호 인양 성공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할 말이 없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시민들도 한마음이었다. 팽목항이나 세월호 천막이 있는 광화문광장을 찾아 성공적인 인양을 기원했다. 팽목항을 찾은 이덕보 씨(57·여)는 “부디 인양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팽목항 방파제에서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오후 팽목항 분향소를 방문해 20초간 묵념하고 잠시 영정사진을 바라본 후 방명록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어서 돌아오소서!”라고 적었다.

진도=이형주 peneye09@donga.com / 이호재 / 안산=김하경 기자
#세월호#인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