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들, 보수층 여론 의식해 ‘박근혜 前대통령 구속’ 여부에 말 아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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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前대통령 소환조사]문재인 “박근혜 前대통령 진실 밝히고 용서 구해야”
안희정 “시대 교체의 출발점이 돼야”
친박계 “불구속 수사로 예우 갖춰야”… 비판 여론 우려 삼성동 집결은 안해
한국당 논평 안내놔… 박근혜 前대통령과 거리두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은 대선 판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 여부가 48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을 흔들 수 있어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각 당 대선 주자들은 이날 한목소리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자가 ‘구속 수사가 적절하냐’를 두고는 말을 아꼈다.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파면당한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사를 받으면 일부 보수층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는 등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통령은 모든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며 “검찰은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측도 “시대 교체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통령 본인이 야기한 국정 혼란과 국론 분열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대선 주자들의 이런 ‘신중 모드’는 박 전 대통령 구속이 미칠 파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당장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동정론을 일으킬 수 있다. 유력한 보수 진영 후보가 없어 뿔뿔이 흩어진 보수층을 단단히 묶어 낼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면 박 전 대통령 구속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면 역으로 야권 지지층도 결집해 야권 주자에게 마이너스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검찰 수사로 박 전 대통령의 비위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다면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선명성을 강조해 온 야권 주자들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촛불 정국’에서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13개 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 피의자”라며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라”고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았다. 자신의 선명성을 앞세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국면을 지지율 반등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 대선 주자들의 셈법도 복잡하다.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한국당의 친박(친박근혜)계 대선 주자들은 불구속 수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김진태 의원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대거 몰려갔던 친박계 인사들은 이날 검찰 출두 과정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친박 세력이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계 의원 측은 “일부 의원이 삼성동 자택 방문 계획을 세웠지만 (역풍을 우려해) 가지 않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출석 메시지에 대한 물음에 “박 전 대통령 얘기를 왜 우리에게 물어보느냐”며 “300만 당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한국당이) 논평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당이 여당 지위를 내려놓은 만큼 박 전 대통령을 ‘일개 당원’으로 규정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은 대변인 차원의 공식 논평도 내지 않았다. 한국당 관계자는 “우리의 주적(主敵)은 문 전 대표다. 모든 화력을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는 것은 대선이 미래가 아닌 과거 이슈에 묻히는 것”이라며 “리더십과 공약을 판단할 시간이 부족한 조기 대선 상황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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