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학생들에 “선거인단 참여” 강권… 경선 ‘강제동원’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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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53]일부 대학-이익단체 등 ‘부당한 압력’

‘장미 대선’이 53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일반 국민까지 대선 후보 선거인단에 포함시키는 국민경선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선거인단에 가입하거나 다른 사람의 가입을 독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러나 독려를 넘어 선거인단 가입, 모집을 압박하거나 강요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 교수가 제자에게 “가입하라”

이 같은 ‘강권’ 현상은 정당과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인단 모집에서 두드러진다.

지난주 서울 한 사립대 전문대학원 A 교수는 학생들에게 “민주당 선거인단에 가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학생 이름과 전화번호, 선거인단에 가입하면 휴대전화로 받는 인증번호를 기록한 명단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적 강요”라며 불쾌하다는 학생도 있었다. 결국 ‘사다리를 타서’ 선거인단에 가입할 100명을 추리기로 했다. 실습을 받는 전문대학원생이 교수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A 교수의 전공 관련 단체는 아예 “정치는 숫자 게임”이라며 단체의 간부까지 나서 회원들에게 선거인단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상급단체가 하급단체를 압박해 회원을 동원하기도 한다. 지난달 21일 수도권의 한 교육 관련 단체의 온라인 카페에는 “선거인단 신청 뒤 인증번호를 보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인증번호를 보낼 곳은 이 단체의 전국연합회 사무국 직원으로 명시됐다. 6일 뒤, 다른 지역 단체에도 “이번 주 (인증번호를) 수합해 보내 달라”는 글이 떴다. 지역 연합회의 이 같은 ‘요청’은 이달 초까지 계속됐다.

○ 대놓고 “실적이 필요해”

간호조무사협회는 회장이 직접 선거인단 확보에 나섰다. 이 협회가 회장 명의로 최근 배포한 문자메시지에는 “적정한 수의 선거인단을 마련해 각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회원들에게 인원을 할당하려는 듯 “더 많은 분들(3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자는 순수한 독려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서울 한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황창화 전 국회도서관장은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에 “선거인단을 모집한 뒤 성명, 지역, 연락처와 인증번호를 알려 달라. 실적이 필요하다”고 남겼다. 비판이 계속되자 황 전 관장은 해당 글을 지우고 사과했다.

이같이 선거인단을 끌어 모으는 까닭은 해당 후보나 정당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가 혹은 우리 단체가 이만큼 힘을 썼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암묵적 압박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정당에 미리 ‘눈도장’을 찍으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권’에 시달리는 일반인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B 씨(42·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학부형 단톡방(단체 채팅방)’에서 간사 역할을 하는 인사로부터 “민주당 선거인단에 등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자칫 아이가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가입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 같은 무리한 가입, 모집은 또 다른 ‘동원 선거’에 가깝다”며 “정당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기범 kaki@donga.com·차길호·성혜란 기자
#대선#선거인단#강제동원#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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