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 깬 독학파 링컨… 종교의 벽 허문 케네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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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개막]美 역사 바꾼 ‘이단아’ 대통령들

 20일(현지 시간) 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부동산 재벌에 TV 예능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이다. 미국 제조업의 몰락과 불평등 심화에 분노한 백인들은 판을 바꾸고 싶었고 워싱턴 정가 ‘그들만의 리그’ 멤버인 힐러리 클린턴 대신 “워싱턴 정치는 조작”을 외친 아웃사이더를 선택했다.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트럼프까지 총 44명의 미국 대통령이 나왔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22대와 24대를 역임했다. 백인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출신이 다수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돌연변이 대통령도 여럿 있다. 특이한 이력의 대통령의 탄생에는 변화를 바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작용했다.

카터, 원조 정치혐오 시대의 승자


 베트남전 실패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얼룩진 1970년대의 반(反)워싱턴 정치 혐오증은 2016년 못지않았다. 197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가든. 단상에 선 땅콩농장 주인 출신은 “(워싱턴의) 부당한 로비스트들의 압력을 폭로할 때”라며 “시민에게 정부를 돌려주겠다”고 선언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수락했다. 지미 카터(39대)의 등장이었다.

 조지아 주지사로 4년간 일했지만 ‘깡촌’ 출신 카터를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카터는 대선 1년 전 전국 지지율 1%의 철저한 무명이었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37대)의 거짓말로 워싱턴의 닳고 닳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던 당시, 유권자들의 눈엔 독실한 기독교인 ‘촌뜨기’가 오히려 신선했다. “거짓말 안 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워싱턴을 뒤집겠다”라고 약속한 카터에게 미국인은 표를 던졌다.

 1970년대의 정치 혼란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선거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도 탄생시켰다. 1973년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뇌물 수수로 불명예 퇴진하자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이던 제럴드 포드(38대)는 닉슨 대통령에 의해 신임 부통령으로 임명됐다. 그 뒤 1년도 안 돼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하야하자 포드는 얼떨결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학벌주의를 타파한 대통령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이라며 학벌을 자랑했다. 트럼프를 포함해 1990년대 이후의 미국 대통령 5명은 모두 동부지역 8개 명문대인 ‘아이비리그’ 학위가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을 보면 명문대 졸업장이 필수품은 아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대통령도 12명이 있다. 미국 노예 해방의 아버지이자 2014년 미국정치학회가 뽑은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16대)은 대학을 다닌 적이 없다. 링컨은 27세였던 1836년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고 6·25전쟁 참전을 결정한 해리 트루먼(33대)은 전문대를 중퇴했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

 트루먼을 마지막으로 고졸 대통령의 명맥은 끊겼지만 비(非)명문대 출신 대통령은 계속 등장했다. 린든 존슨(36대)은 텍사스주립대의 전신인 남서텍사스교육대를 졸업했다. 닉슨은 듀크대 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캘리포니아 주의 휘티어대를 나왔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40대)은 일리노이 주의 유리카대 출신이다.

최연소 대통령은 루스벨트


 43세에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35대)는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최연소 대통령은 아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는 케네디보다 한 살 적은 42세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케네디는 최초의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다. 케네디 측근이 “선거 유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종교 문제였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당시에는 가톨릭교도 대통령이 바티칸에 휘둘릴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케네디는 “나는 가톨릭이 아닌 민주당 대선후보”라고 설득에 나서는 한편 “(종교로 인해) 이해충돌이 생긴다면 사퇴하겠다”고 강수를 둬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결국 대통령은 반드시 개신교 신자라는 암묵적 규칙이 깨졌다.

 2009년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44대)가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엔 최초의 모르몬교도 대통령 후보(공화당 밋 롬니)가, 지난해엔 최초의 주요 정당 여성 후보(힐러리 클린턴)가 등장했다. 미국 대선에서 금기는 점점 깨지고 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학벌주의#링컨#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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