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 ‘트럼프 제국’의 개막… 선장 없이 표류하는 대한민국號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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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부동산 재벌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가 20일(현지 시간) 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8년 전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취임할 때는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변화와 희망’에 대한 기대로 차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 경제가 회복됐음에도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반발, 반(反)이민 정서,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와 갈등이 부글거린다. 이 같은 정서에 영합해 당선된 포퓰리스트 대통령인 만큼 트럼프는 경제에선 보호무역주의, 안보에선 ‘힘의 외교’를 내걸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스트롱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격랑이 예상되는 분야는 단연 미중 관계다. 미국은 통상과 안보 분야에서 중국이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18일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무역적자를 키우는 중국에 대해 ‘가장 보호무역주의가 강한 나라’ ‘악의적 통상 행위’ 등의 표현을 써가며 통상전쟁, 환율전쟁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며 압도적 군사력과 경제 정책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를 구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해양 강대국과 대륙 강대국이 맞부딪치는 한반도는 트럼프 시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초(超)불확실성’을 온몸으로 겪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의 갈등과 대립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크게 의존했던 지금까지의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8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 연설에서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고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핵을) 철저히 폐기해 핵 없는 세계를 실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미온적 대북제재 이행에 “중국의 빈 공약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해 온 트럼프 측에 대해 시 주석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인 ‘핵 없는 세계’를 들먹이며 반격에 나선 형국이다.

 이미 북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을 떠보려 하고 있다. 북이 ICBM 추진체로 보이는 물체를 이동시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은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예고한 것이 실행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북에 대한 선제타격론자를 필두로 대북 강경론자가 주류다. 중국이 ‘핵 없는 세계’를 주장하며 또 6자회담 같은 대화를 들고 나올 경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의 협력이 꼬이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분명히 줄을 서도록 선택을 요구받을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가 모두 시험대에 오르면서 한국 외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미국과 북한이 북핵의 동결 등을 놓고 협상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어느 경우이든 한국이 국가의 안위가 걸린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대미 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처와 병행해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한미동맹의 재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미동맹 강화’라는 뻔한 답안을 넘어 우리도 실리를 챙기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을 다질 현실적인 복안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에선 안미경중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이 ‘경제전쟁’ 강공책으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역시 대미 흑자 폭이 큰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개연성이 있다. 미중의 통상 마찰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경우 중국을 통한 한국의 대미 간접 수출도 유탄을 맞게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자국 일자리가 잠식되고 있다고 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부는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일자리 창출효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미 행정부에 한미 FTA 효과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한국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트럼프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트럼프 시대에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국제사회의 기류 변화 속에서 한국이 낙오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국가 리더십을 안정시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전화하려 해도 전화 받을 수 있는 지도자가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돼선 곤란하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외교 안보 경제 등 국정 전반을 다잡고 트럼프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대선주자들도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기보다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운명을 직시하고 국익을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한반도 주변의 ‘스트롱맨’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지구촌의 각박한 국익 각축전에서 한국의 자리를 배려하고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취임식#대륙간탄도미사일#선제타격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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