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난, 글 공장의 직장인… 확신하고 의심하며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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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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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시나리오

이인혜 씨
이인혜 씨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오후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 당선을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를 현실감 없이 듣고 있는데 제 심장 뛰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정도로 요동치며 마음껏 기뻐하더군요. 제 자각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실감이 나면서 여러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커피를 벗 삼으면서 노트북과 씨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썼습니다. 글 공장에 다니는 직장인처럼 오전에 시작해 오후에는 끝내는 일상을 반복하며 하루는 내 글을 확신하고 또 다음 날은 내 글을 의심하며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은 글을 혼자 그렇게 열심히 쓸까?’라고 자문하곤 했었는데, 당선 전화를 받은 지금은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써라”라고 누군가 말해준 듯해 행복하고 설렙니다.

 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무조건적인 신뢰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과 아들, 존경하는 부모님, 가족께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같은 고민을 안고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작품을 쓰고 있을 글동무와 늘 의지가 되는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글공부를 하면서 좋은 스승님들께 많은 가르침 받았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만 마음껏 기뻐하고 내일부턴 다시 글 공장의 직장인이 되어 매일매일 성실하게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83년 경남 양산 출생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창작반 수료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 익숙한 소재의 ‘시간여행’… 무리한 꾸밈 없어 안정

 
[심사평]시나리오
 
 올해 시나리오 응모작은 72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0편 중에서 당선작을 내는 일은 쉽고도 어려웠다. 다시 말해, 당선작과 각축을 벌일 만한 작품이 없었고, 또한 당선작을 내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루었던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은 ‘비밀의 창고’는 상황 설정이 새롭지 않아서 기시감도 들었다. 하지만 과거를 바꿔서 현재를 다시 쟁취한다는 기존의 익숙한 전개보다는 과거를 놓아주고 새로운 미래를 피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소박한 차별화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처음 만난 인물들이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극을 끌어가는 ‘나이스 크리스마스’는 연극적인 독특함보다는 산만함이 더해 점수를 잃었다. 제주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해녀들의 삶을 보듬은 ‘숨비소리’는 착하고 건강한 시나리오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집착해 작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비밀의 창고’는 결선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안정된 글 솜씨를 보였고, 무리해서 꾸미지 않은 덕에 작가의 차분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를 다룬 탓에 점수를 크게 얻지 못했기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는 심정은 칭찬이라기보다는 격려에 가까움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그만큼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이 크다.

이정향 영화감독·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이인혜#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시나리오#비밀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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