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간부들 감시 심해져… 현영철도 도청에 걸려 총살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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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5년’ 북한의 현주소]태영호 前공사가 밝힌 공포정치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사진)는 “김정은 폭압 공포 통치 아래 노예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은 19일 서울 모처에서 여야 간사와 함께 태 전 공사를 3시간가량 만난 뒤 이같이 전했다. 태 전 공사가 7월 말 한국으로 망명한 지 약 5개월 만의 첫 외부 접촉이다. 국가정보원은 태 전 공사가 23일부터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정은에 찍히면 일거수일투족 감시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선 직위가 올라갈수록 감시가 심해져서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며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 자신의 자식, 손자 대까지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간부들도 많다”고 말했다고 이 위원장이 전했다.

 태 전 공사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지난해 5월 총살당한 것도 집에서 했던 이야기가 도청됐기 때문”이라며 북한 공포통치에 동요하는 엘리트들의 실상을 공개했다. 당시 한국에는 현 전 부장이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졸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제시됐지만 또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일단 특정인이 김정은의 눈에 찍히면 은밀하게 조사하라는 지시가 하달되며 이때부터 숙청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고위급 군 간부나 보위성 간부 등을 특정 아파트에 같이 거주하게 한 뒤 집집마다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바람에 간부들은 집에 가서 할 말도 못하고 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에 호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입주자들에 대해 “당의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입주자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인 셈이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 엘리트층은 체제 붕괴 시 자신들의 운명도 끝난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충성하는 시늉만 내고 있으며, 주민들도 낮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엔 이불을 덮어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동경심을 키워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은 2인자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김정은 한 명만 제거하면 무조건 통일이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이 위원장은 밝혔다.
○ 노예의 사슬을 끊는 탈북

 “이 순간부터 너희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 주겠다.”

 태 전 공사가 귀순 당시 동행한 두 아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는데 (한국에) 와 보니 왜 진작 용기를 내서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까지 든다”고 말했다고 이 위원장이 전했다. 이 위원장은 “태 전 공사가 오랜 해외 생활을 통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보며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체감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때문에 오래전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자신의 귀순을 횡령 등 범죄로 규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태 전 공사는 “(북한의) 모략에 대비해 귀순 전 대사관 내 자금 사용 현황을 정산하고 사진까지 다 촬영해 놓았다”고 치밀한 탈북 준비 과정을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태 전 공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개인의 영달이 아닌, 북한 주민들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민족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다.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기여하기도 전에 갑자기 통일이 될까 두렵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김정은#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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