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대통령은 자신을 내려놓고, 野는 대권 전략적 계산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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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정국 해법 지혜 모으자]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에게선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1920년생으로 교과서에서나 보는 윤동주 시인과 평양 숭실중 동기다. 김 교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현 시국의 흐름을 꿰뚫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시대의 현자다. 6일 오후 경기 과천교회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을 지켜본 뒤 그를 인터뷰했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콩나물에 물 주듯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읽어 지혜의 물을 줘야 인간 정신이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권엔 정신에 물을 주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며 “국제 거래에서 많은 걸 배우는 기업인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콩나물에 물 주듯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읽어 지혜의 물을 줘야 인간 정신이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권엔 정신에 물을 주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며 “국제 거래에서 많은 걸 배우는 기업인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대통령… 말 잘듣는 사람만 쓰다보니 민심 제대로 못읽어… 개헌 제안도 국민관심 돌리려는 수단으로 비쳐

 ―최순실 씨 등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으로 대한민국이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통령은 자기에게 편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줄 친구가 많아야 합니다. 그게 정치인의 기본이죠.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고백하듯 친구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최순실 같은 특정인하고만 같이한 거죠. 그러니 민심을 알 수 없었고, 판단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번 사태로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의 문제점이 크게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에 지도층이 부재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두꺼운 지도층에서 대통령감도 나오고 국회의원, 장관이 나와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이 지도자 위치에 선 거죠.”

 ―이번 사태로 국정 운영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는데….

 “무엇보다 대통령이 큰 일, 작은 일 혼자 다 하려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장관으로 쓰기보다는 자기만 바라보는 사람을 쓴 거죠. 이승만 대통령 당시도 초기 내각을 보면 훌륭한 인재가 많았죠. 그러나 비서조직을 아첨하는 사람들로 쓰다 보니 유능한 장관들이 다 나갔죠. 큰 그릇이 소인배들과 같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집권 당시 우려보다 경제 부문 등에서 비교적 성공한 것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장관에게 전권을 줬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자기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만 썼죠. 용인(用人)에 실패한 겁니다.”

 ―대통령의 사과를 어떻게 보셨나요.

 “4일 대통령의 2차 사과는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사과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사과였습니다.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말만 했을 뿐 ‘충심을 가지고 나라를 위했는데 제대로 안 됐다’는 식의 사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죠. 지금은 자기를 모두 내려놓는, 진솔한 사과가 필요했습니다. 개헌 제안도 그렇습니다. 국민은 그걸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정치적 수단으로 본 겁니다.”

 ―어쨌든 지금의 혼란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데 대통령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외교 안보 등 외치를 뺀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맡긴 뒤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새 총리가 내정도 알아서 하고, 세월호 사건도 알아서 처리해야겠죠. 이건 이번 사태와 상관없이 원래 이렇게 해야 합니다. 개헌 하면 이원집정부제 얘기가 가장 많은데 현행 헌법에서도 충분히 가능해요. 개헌이 아니라 나라의 살림살이 방식만 바꾸면 되는 겁니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만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수습하는 방식은 아니죠. 대통령이 하야하면 두 달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등 실질적 법적으로 많은 곤란한 문제가 생겨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 정치권… 與친박 지도부 물러나고 비박과 혁신 힘 합쳐야… 野신경 90% 대권에… 욕심 안버리면 국민 떠날것 ▼

 
 ―야당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에 대해 우선 사퇴를 요구하는데요.


 “현 상황에서 김 후보자가 사퇴한 뒤 새 총리 후보자를 야당과 협의해 정하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혼란과 국정 공백 사태가 지속됩니다. 김 후보자나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 모두 과거 야당에 몸담았던 적이 있는 만큼 야당과 속내를 털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당은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자중지란으로 붕괴 직전입니다.

 “우선 대통령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만큼이나 ‘친박’의 책임이 큽니다. 지난 총선 때도 친박은 국민이 크게 실망할 만한 행보를 보이며 패했잖아요. 대통령은 탈당하고 문제가 많았던 친박 지도부도 물러나야죠. 그런 뒤 친박, 비박이 힘을 합쳐 여당의 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야당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바람직합니까.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의 사고방식이나 목표의 90%쯤은 대권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민 여론이 그들 편인 것 같지만 이런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이 떠납니다. 야당은 이번 사태에서 대권을 위한 행보가 아니라, 국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선의가 담겨 있음을 진심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의 큰 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꾸 득실만 따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죠. 국민의 분노가 그만큼 큰 상황인데요. 평생 철학자로서 ‘행복’을 말씀해 오셨는데 국민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아까 말한 대로 대통령 하야나 퇴진 주장이 충분히 나올 만한 상황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그런 걸 외칠 수 있고요. 나라꼴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 뜻을 살려줘야 청와대가 살고 정치권이 삽니다. 이처럼 큰 시련이 우리나라 발전의 또 다른 계기가 되도록 정치권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96) ::


△1920년 평양 출생 △1943년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 졸업 △연세대 철학과 교수(1954∼1985) △김태길(2009년 별세) 안병욱(2013년 별세) 교수와 3대 철학자로 꼽힘 △올해 8월 출간한 수필 ‘백년을 살아보니’는 베스트셀러로 화제 △백수(白壽·99세) 앞둔 나이에도 기업 학교 등에서 ‘현자(賢者)’와의 대화 등 강연 활동

주요 저서

‘고독이라는 병’ ‘현대인의 철학’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과 공저)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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