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였다. 야당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모든 화력을 집중했다. 청와대는 최 씨 관련 의혹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제 안보-경제 쌍끌이 위기 속에 ‘최순실 블랙홀’에서 벗어나 국정을 정상화시킬 책임은 검찰로 넘어갔다. ○ 안종범에 쏠린 야권 공세
야당 의원들의 질문은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몰렸다. 안 수석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청와대의 ‘연결고리’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재단이 대기업에서 774억 원을 모금하는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안 수석→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 지시가 내려갔고, 그 배후에 최 씨가 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안 수석은 최 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재단 설립을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다만 이 부회장이 지난해 8, 9월경 안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와 “기업들이 뜻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라고 알렸고, “좋은 취지의 재단을 잘 만들었다”라고 격려한 게 전부라는 것이다. 또 당시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해 박 대통령도 재단 설립 추진을 알았다고 했다.
안 수석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통화한 사실은 확인됐다. 이 전 사무총장은 안 수석이 통화에서 자신의 사임을 요구했으며 정권 실세 등과의 녹취록 77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통화 당시 안 수석은 박 대통령을 수행해 멕시코를 방문하고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9월 미르재단을 나왔다. 안 수석은 “지난 4월 4일 미르재단 사무총장에게 전화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 “전화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안 수석은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다음 순방과 관련해 통화했다”라며 “자세한 내용은 수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사무총장에게 “(당신과 관련한) 안 좋은 소문이 있다”라고 말한 사실은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백 의원은 이날 ‘미르재단이 교육 문화뿐 아니라 통일 관련 사업 등 정부의 온갖 사업에 관여했다’라는 이 전 사무총장의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안 수석이 모 재벌 회장에게 ‘K스포츠재단에 10억 원을 더 내라’라고 했더니 ‘내가 지금 정부의 큰 프로젝트에 1000억 원 이상 썼고 미르재단에도 10억 원을 냈는데 또 K스포츠재단에 10억 원을 내라고 하느냐’고 답변했다는 말도 나온다”라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문제를 거론했다. 안 수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최 씨 일가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에 올린 가족 소개에서 부친 정윤회 씨에 대해 ‘박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라고 적은 데 대해 “최 씨가 호가호위하니 딸도 그런다. 최 씨와 관련해 풍문까지 단서로 삼아 모든 의혹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두 재단 의혹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대책회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문제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회의를 한 적이 없다. (박 대통령과도) 논의해 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 끝내 국감장에 나오지 않은 우병우
이날 국감에선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출석 거부를 두고 국감 시작과 함께 1시간 넘게 여야 공방이 오갔다. 운영위원장인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청와대 참모진은 대통령 참모일 뿐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출석해 국정을 보고하고 감사를 받을 의무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 4시 반을 출석 마지노선으로 최후 통첩했다.
그럼에도 우 수석이 나오지 않자 정 원내대표는 이 비서실장에게 “직접 우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 의사를 확인하라”라고 요청했다. 우 수석의 출석 거부 의사를 최종 확인한 여야는 다음 주 우 수석을 고발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우 수석의 불출석으로 우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는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 ‘죄의식 없는 확신범’ 논란
이날 국감에선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을 두고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라고 말해 국감이 일시 중단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이 비서실장은 노 원내대표에게 “(박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 공개석상에서 그런 얘기는 지나치다”라고 반발했다. 정 원내대표도 노 원내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노 원내대표는 “(두 재단 모금은) 자발적 모금이 아닌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라며 “법령을 위배하는 행위일 수 있는데 죄의식이 없는 게 사실 아니냐”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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